[동아광장/손성원]韓銀은 왜 제로금리를 목표로 삼지 않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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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 파트너 中-유럽 경제 부진… 한국, 망망대해 떠있는 조각배
韓銀 찔끔찔끔 금리인하로는 통화정책 성공할 수 없어
美연준 ‘제로금리’ 선언 같은 시장 예상 깨는 깜짝인하해야

손성원 객원논설위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
손성원 객원논설위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2%로 결정했다.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역사적으로 가장 낮은 금리다. 일각에선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올해 3.5%에서 2015년엔 4%로 뛸 것이고, 앞으로 인플레율이 가파르게 오를 것이라고 한다. 미국 중앙은행처럼 한국은행도 금리를 올리는 것을 고려해야 하고 향후 추가 금리 인하는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른 한편에선 세계경제가 활기를 잃고 디플레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어 세계경제와 한국경제 전망이 뚜렷이 개선될 때까지는 한국은행이 금리를 계속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금 세계경제는 참으로 걱정이다.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경제는 망망대해(茫茫大海)에 떠 있는 한 척의 배와 같다. 한국경제는 세계경제 추세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한국은 중국과 유로존 미국의 경제 상황에 큰 영향을 받는 수출 의존 국가다. 한국의 많은 주요 교역 파트너들의 경제가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은 런민은행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은 2, 3년 전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중국경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부동산에선 거품이 빠지고 있다. 중국의 주요 도시에서 주택 가격이 떨어지고 매매도 덩달아 줄고 있다. 중국 정부는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7.5%로 잡았지만 일부 연구기관은 향후 수년 동안 6%에 그칠 것으로 예측했다.

유로존은 다시 불황에 빠질 수도 있다. 유로존의 경제 엔진인 독일은 성장을 멈췄다. 프랑스도 비슷한 처지다. 실제로 물가 상승세는 멈췄다. 향후 물가가 낮아질 것이란 기대로 소비는 주춤해지고 있다. 미국경제는 다른 어느 선진국보다 좋은 편이지만 경제성장은 탄탄하지 않은 편이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과거 최고치보다 7% 높은 수준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지금과 같은 경제회복 단계라면 최고치 대비 20% 가까이 높아야 한다.

중국과 유로존의 부진한 경제성장은 미국 성장세를 끌어내릴 것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미국의 노동시장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고 했지만 부진한 세계경제 상황과 강한 달러로 인해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내년 중반부터 일정 기간 금리를 인상하지 못할 것이다. 일각에선 한국은행이 잠재적인 자본유출을 우려해 금리를 내릴 여유가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일단 연준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이로 인해 한국의 자본유출이 더욱 가속될 것이다. 더욱이 원화 약세가 되면서 인플레를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시나리오는 가능한가.

지금부터 딱 10년 전 한국은행은 두 차례에 걸쳐 금리를 0.5%포인트 인하했다.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한국 원화는 절상됐다. 외국자본이 한국 증권시장으로 유입돼 주가가 급등했다. 실질적으로 한국으로의 자본 유입은 개선된 것이다. 자산 가격도 어느 정도 올랐다. 대출금리가 낮아지고 향후 경제 전망도 밝아지면서 소비자들의 지출은 급증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여기서 키워드는 ‘예상(expectations)’이라는 단어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한 사실이 경제성장을 낙관적으로 보는 촉매가 됐고 한국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찔끔찔끔 내리는 것이 경제에 대한 예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통화정책이 효과를 내려면 깜짝 놀랄 만한 요소가 있어야 한다. 연준 이사회가 수년 전 제로금리를 선언하고 양적완화(QE)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모든 미국민이 정말로 깜짝 놀랐다. 대부분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첫 번째 양적완화―지금까지 3차례 있었다―가 가장 효과적이고 성공적이라는 데 동의한다. 왜 그럴까. 첫 번째 양적완화에는 깜짝 놀랄 만한 요소가 들어 있었지만 이어진 두 차례 양적완화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금리와 유동성 수준이 중요하지만 통화정책을 성공적으로 만드는 두 번째 중요한 것은 예측을 뛰어넘는 ‘놀라움(surprise)’이다. 정기적으로 0.25%포인트씩 금리를 내리는 방식으로는 예측을 뒤바꾸는 기습적인 놀라움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금리 인하 방식은 경제에 최소한의 효과만 줄 수 있다.

향후 세계경제와 한국경제 전망이 어느 정도 좋아지지 않는다면 한국은행은 금리를 더 급격히 떨어뜨리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심지어 제로금리 수준으로까지 인하할 필요가 있다. 지금 세계적인 디플레 추세를 보건대 인플레가 당분간은 한국경제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손성원 객원논설위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
#한국은행#제로금리#유로존#통화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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