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중경]軍 신뢰 높아지면 金 모아서도 보태줄 수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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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무기가 승패 가르는 현대전, 中日러 군비경쟁 치열한데
한국軍, 여전히 보병위주 편제
남북대결의 좁은 시야 탈피… 中日러 대비 軍전력 강화 시급
“첨단 强軍 위한 대수술 필요”
국민에게 진솔하게 밝히고 부족한 예산 지원 호소하라

최중경 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위원 동국대 석좌교수
최중경 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위원 동국대 석좌교수
영화 ‘명량’이 기존 흥행기록을 멀찌감치 뒤로하고 깨지기 힘든 신기록을 세웠다. 나라와 백성을 구한다는 일념으로 헌신했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대한 존경심과 뭔가 많이 부족해 보이고 답답한 현실에 대한 실망감이 상승 작용을 일으킨 결과로 보인다.

김훈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는 몇 번을 읽어도 그때마다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느껴지는 감동이 있다. 작가의 문장력도 압권이지만 이순신 공께서 가진 고뇌의 숨결까지 가까이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생각나는 구절은 공께서 ‘칼을 찬 자의 부끄러움’을 언급하는 부분이다. 나라의 녹을 먹는 무관으로서 백성을 온전하게 지키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이 배어 나온다.

평화시대라 무공을 세울 기회도 없이 별을 달고 있는 군 장성들에게 ‘칼을 찬 자의 부끄러움’은 어떤 것일까? 병영 내 가혹행위, 성추행이 드러났을 때 느끼는 당혹감일까? 노크귀순과 같은 전방 부대의 경계 실패가 언론에 노출됐을 때 느끼는 낭패감일까? 정치권의 주문에 따라 미군의 전시작전권에 관한 입장을 정하는 과정에서 전환에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소신을 위해 자발적으로 떨어진 별이 확인되지 않는 것이 ‘칼을 찬 자의 부끄러움’이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군의 주도적 역할 없이 한국군이 적을 물리칠 수 있는 역량’에 관한 군사 기술적 판단이 사정 변경도 없는데 오락가락할 때 국민이 느끼는 불안감과 우방국들이 갖는 불신감은 크다. 전시작전권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러 명의 군 장성이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방침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군복을 벗었던 존 싱글러브 장군의 뒤를 따랐어야 했다.

남의 나라인 한국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보장된 미래를 희생한 싱글러브 장군이 전시작전권 논란을 보며 무엇을 생각할지 궁금하다. 대륙간탄도미사일 시대에 살면서 제2차 세계대전 때나 첨단 전술로 대접받은 보전포(보병, 기갑, 포병) 합동작전과 근접항공지원 훈련 결과에 만족하며 모든 것이 준비된 것처럼 생각하고, ‘보병사단의 용감무쌍한 돌격이 승패를 결정’한다고 믿는 군 장성이 있다면 그것이 ‘칼을 찬 자의 부끄러움’이다.

군 장성들은 재래식 무기 체계 안의 남북 대결에 갇혀 있지 말고 넓은 안목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상황을 이해하고 중국, 일본, 러시아의 군사력 팽창에 대비하는 군 전력 강화계획을 수립해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종합전력이 세계 8위라지만 현대전에서 큰 역할을 못하는 보병 위주의 낡은 편성을 감안하면 과대평가이고 한반도 주변의 군사력을 보면 8이란 숫자도 무의미하다. 군 장성들은 약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현대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첨단 전력 위주로 군을 대수술할 필요성을 국민에게 호소해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정치권의 입맛대로 예산 배정 우선순위가 매겨지고 그 결과로 주어진 국방예산을 받아들고 한탄만 한다면 귀가 닳도록 들은 충무공 정신을 망각하는 것이다.

무인공격기 드론과 같은 첨단 무기가 동원되는 현대전에서 용기와 사명감만으로는 이길 길이 없다. 돌이켜 보면 과거에도 전쟁의 승패는 국가기술 수준이 좌우했다. 명량해전의 승리도 바닥이 평평해 제자리 360도 회전과 전방위 함포 사격이 가능했던 첨단 전투함 판옥선이 있었고 서양에서는 19세기에 출현하는 산탄대포가 비격진천뢰, ‘조란탄을 장전한 총통사격’의 형태로 운용되어 인명 살상 능력과 선체 파괴 능력에서 절대적으로 우월한 기술이 있어 가능했다.

최근에 일본이 최신예 전투기와 첨단 해군 전력을 늘릴 계획을 발표하고 중국도 항공모함과 스텔스기를 독자 개발하는 등 한반도 주변의 첨단 전력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구한말의 조선과 청나라가 겪은 국가적 치욕은 군비 현대화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조선은 가난해 군비 현대화를 할 능력이 없었지만 대한민국은 가난하지 않다. 청나라는 세상 물정에 어두운 황실에서 신식 군함 살 돈으로 궁정을 치장하는 어이없는 행태를 보였지만 대한민국은 그런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군 장성들의 정확한 방향 설정과 충정으로 군비 현대화를 추진할 수 있다. 우리는 군을 국민의 군대로 신뢰하고 사랑한다. 군 장성들이 첨단 전력 예산이 부족하다고 진솔하게 얘기하면 금을 모아서라도 보태줄 위대한 국민 앞에서 주저할 이유가 있는가. ‘동북아의 영원한 난쟁이’가 될 순 없다.

최중경 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위원 동국대 석좌교수
#첨단 무기#국가안보#전쟁#명량#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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