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윤종빈]국회의원 출판기념회 아예 없애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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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은 “의정활동 홍보”, 속내는 정치자금 편법 모금
선관위 ‘정가 판매’ 개선안, 모금상한액 등 제한 없어
의원들에게 면죄부만 줄 우려
법 개정 기다리지 말고 與野 “출판기념회 폐지” 선언
특권 내려놓기 행동으로 보여라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회의원 출판기념회가 음성적인 정치자금 모금의 통로로 변질되었다. 최근 뭉칫돈이 발각된 몇몇 현역의원이 각종 비리와 입법로비 의혹으로 사법부의 조사를 받고 있는데 돈의 출처를 출판기념회라고 밝혀 더욱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식물국회가 몇 달간 지속돼 국회의원의 자발적인 세비 반납이 필요한 상황에서 편법적인 출판기념회가 불거져 국회에 대한 여론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매년 9월 국정감사와 맞물려 성황을 이루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올해는 출판기념회가 거의 자취를 감춘 분위기다. 상임위원회 피감기관과 동료 의원들이 고가의 책값을 반강제적으로 내는 것이 당연한 도리였고, 힘 있는 실세 의원들은 수억 원까지도 챙겼다는 것이 정설이다. 정치인들 스스로 걷잡을 수 없이 악용해 자업자득(自業自得)에 빠졌다.

출판기념회에 대해 두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국회의원들이 왜 출판기념회 개최에 혈안이 되어 있을까. 아주 쉽고 편리한 정치자금 모금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후원금의 경우 모금은 물론이고 지출 또한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깨끗한 정치를 위해서다. 반면에 출판기념회를 통한 모금은 액수와 지출 내용을 신고할 필요가 없다. 달콤한 편법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두 번째 궁금증은, 출판기념회가 필요한 이유다. 현역의원들의 의정활동 홍보용이라는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그들은 다양한 방식의 지역구민 접촉을 통해 충분히 자신의 업적을 홍보할 수 있다. 더불어 공식적인 ‘의정활동보고서’ 발간을 위해 연간 1000만 원 이상을 국가에서 보조한다.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이 임기 중에 국회의원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기로 결의할 것을 제안한 것은 상당히 신선하다. 법 개정은 시간이 걸리고 가능성이 크지 않다.

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출판기념회 개최의 사전 신고를 전제로 출판사가 현장에서 정가로 책을 판매하는 것만을 허용하는 개선안을 제시했다. 출판의 자유는 보장하되 정치자금법의 모금 방법으로는 보지 않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아쉽게도 당초 검토했던 개최 횟수 제한, 모금 상한액 지정, 모금액 사후 신고는 빠졌다. 특히 모금 상한액과 판매 수량이 제한되지 않으면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2만 원 정가의 책을 50명의 이해당사자가 현장에서 각각 100권을 구입하면 1억 원이 된다. 너무 비상식적인 상황이지만 얼마든지 가능하다. 모금액 사후 신고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출판사와 국회의원의 수익 배분구조는 밝혀지지 않을 것이고 정가만 지불하면 다량의 구입 및 판매는 불법이 아니다. 이대로 개정된다면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자금법을 우회하는 새로운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다행히 여야가 혁신 경쟁에 돌입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출판기념회를 통한 모금 행위는 정치자금법 위반이고 탈세라고 지적했고 같은 당 보수혁신위원회 김문수 위원장 또한 개선 의지를 피력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치혁신실천위원회 원혜영 위원장은 좀 더 강한 입장으로 폐지할 것을 제안했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출판기념회의 수입과 지출 명세를 중앙선관위에 보고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2004년 정치관계법 개정 이후 정치인들이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는 통로는 매우 좁아졌다. 기업과 단체의 후원금 기부는 물론이고 후원회 개최를 통한 모금도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차떼기로 기억되는 2002년 불법 대선자금의 국민적 충격을 당시 정치권이 반성하는 의미로 정치자금법을 획기적으로 개혁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치인 입장에서는 현행법이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 국민의 상식으로는 국회의원들이 이미 수많은 특권과 혜택을 누리고 선거공영제를 통해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는데 왜 더 많은 정치자금이 필요한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2012년 대선 공약 이후 수차례 약속했던 특권 내려놓기 발언들이 아직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법 개정에 앞서 출판기념회를 없애겠다고 재빠르게 결의하는 정당이 혁신 경쟁에서 승리할 것이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회의원#출판기념회#정치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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