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안드레이 란코프]5·24조치 해제가 北의 변화를 촉진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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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北 제재에 미온적인 中, 주민고통 신경안쓰는 北정권
北 핵개발 막지 못하고 경제상황에도 영향 못끼쳐… 5·24 조치는 사실상 실패
제재는 쇄국정책만 도와줄뿐 교류활성화만이 北변화 이끌어

안드레이 란코프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국제학부 초빙교수
안드레이 란코프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국제학부 초빙교수
요즘 5·24 대북(對北) 제재 조치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야권은 5·24 조치의 조건 없는 해제가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중요한 걸음이라고 주장하고, 여권은 5·24 조치의 해제를 남한의 일방적 양보로 보면서 북한이 협력에 대한 의지를 보여줘야만 해제가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5·24 조치 해제로 살릴 수 있는 남북 경협이 북한의 정치 노선을 바꾸고 평화통일 기반 조성까지 이루는 방법으로 야권은 보고 있고, 여권은 남북 간 경제협력을 북한의 선행(善行)에 대한 보상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공산국가의 국민으로 공산권 붕괴를 직접 체험한 필자는 양측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남북 협력 및 대북 지원이 있다고 해서 북한의 정치엘리트가 체제 유지를 위협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원과 협력은 ‘선행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효율성도 높지 않다. 그럼에도 남북 경협은 한반도에서 바람직한 변화에 이바지하고 남북한 사람들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이라고 생각된다.

냉철하게 판단해 보면, 2006년에 도입한 유엔 제재처럼 5·24 조치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북의 핵개발을 막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북한 경제 상황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역설적으로 북한의 경제 상황이 좋아지기 시작한 때는 유엔 제재가 도입된 무렵부터다.

대북 강경파 정치인들의 기대와 달리, 경제 제재를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정치를 바꾸도록 할 수 없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중국의 태도다. 북핵을 환영하지 않지만 한반도 불안정과 혼란을 북핵보다 더 큰 위협으로 여기고 완충지대를 필요로 하는 중국은 대북 제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대북 지원을 지속했다. 중국의 대북 경제 지원은 사실상 5·24 조치뿐 아니라 유엔 제재까지 무의미하게 만든다.

둘째로, 북한의 권력구조를 감안하면 정치엘리트는 주민 삶이 어려워진 것을 무시하기 쉽다. 선거가 없으니 서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정치 노선을 바꿀 필요를 별로 느끼지 않을 것이다.

반면 대북 교류는 북한 사회를 차츰 바꿀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의 의식 변화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남북 교류의 본격화는 필연적으로 수많은 북한 주민이 남한 사람, 남한 문화, 남한 기계에 접근하게 되고, 이러한 접촉을 통해 남한을 비롯한 외부 세계의 참된 모습을 점차 배우도록 만든다. 개성공단이든 개성관광이든 북한 주민은 멀리서도 좋은 옷 입고 키가 크고 고급 기술을 자유롭게 쓰는 남한 사람들을 훔쳐보고, 남한이 잘사는 발전된 나라임을 확인할 것이다.

공산권 위기의 역사가 보여주듯 선진국과의 관계는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실망을 초래한 결정적인 요소였다. 물론 소련 및 동유럽 사람들은 몰래 외국 방송을 청취했고 지식인들은 가끔 금서(禁書)까지 읽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서양의 발전된 경제 및 민주주의 체제에 대해 배우게 된 것은 교류와 접근을 통해서였다. 서양 방문객들이 휴대한 카메라나 라디오, 옷차림, 수입 공업시설이나 자동차는 동유럽 사람들에게 시장경제 모델의 우월성을 확인시키고 선진국 국민이 즐기는 개인의 자유도 잘 보여줬다.

북한에서도 외부에 대한 지식의 확산, 특히 남한에 대한 인식의 확산은 일반 민중뿐 아니라 일부 엘리트들까지 북한의 경직된 체제를 변화시킬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 결정권자들에게 압력을 가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 변화가 동유럽처럼 급진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고 중국처럼 점진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지만, 북한 사람들이 ‘매력 있는 사회적 대안’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대북 제재는 북한 수구파가 체제 유지 조건으로 여기는 쇄국 정책을 도와줄 뿐이다.

물론 5·24 조치 해제론에 대한 비판이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만약 이 조치가 바로 해제될 경우, 북한은 아무런 양보도 없이 다시 한 번 이득을 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24 조치는 기회가 될 때, 최대한 빨리 해제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 경협을 통해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원하는 북한의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방법은 교류의 활성화이기 때문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국제학부 초빙교수 andreilankov@gmail.com
#5·24조치#북한#핵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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