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신기욱]대학 구조조정, 이왕 하려면 통 크게 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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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의 대학 구조조정계획
과거처럼 기초학문 위축이나 획일적 정원 감축 그칠 우려
고등교육 상생-발전 시키려면
서울대-지방국립대-전문대간 편입학의 문 활짝 개방을
한 학과나 전공의 특성화 아닌 대학 특성화도 고려해 볼만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도 고등교육 제도가 가장 잘 발달되어 있는 주 중 하나이다. 주립대학의 경우 종합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캘리포니아대(UC), 지역대학의 성격이 강한 캘리포니아주립대(CSU), 그리고 커뮤니티 칼리지로 알려진 2년제 주니어 대학 등 계열별로 나뉘어 있으며 상호 유기적이고 보완적인 관계로 고등교육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립대 계열 간 상생 관계를 보여주는 좋은 예의 하나가 편입학 제도이다. 스탠퍼드에서도 가까운 쿠퍼티노 시의 디앤자 칼리지(De Anza College)의 경우 지난해 2학년을 마친 약 5000명의 학생이 4년제 대학에 지원하여 UC 계열에 727명, CSU 계열에 1225명 등 절반가량이 편입학 허가를 받았다.

미국에선 많은 학생이 학비를 절감하거나 종합대학에 가기 전 적응을 위한 준비 등으로 주니어 칼리지를 적극 활용한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나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등 명문 UC 계열 대학 입학생의 20% 이상이 편입생이며 이들 편입생 중 80% 이상이 캘리포니아 주 내 주니어 칼리지 출신으로서 캘리포니아주립대 계열 간 상호보완적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 전체를 봐도 박사 과정이 있는 연구 중심 대학뿐 아니라 학부 중심으로 운영되는 인문대학(liberal arts college)이 있다. 인문대학의 경우 대부분이 1000∼2000명 규모의 작은 ‘시골 학교’지만 우수한 교수진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들을 통한 탄탄한 기초교육으로 수많은 졸업생을 좋은 대학원으로 진학시킨다.

얼마 전 교육부가 ‘정원 감축’ ‘새로운 대학 평가체제 도입’ ‘구조개혁의 법적 제도적 기반 구축’을 골자로 한 대학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였다. 아울러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대학 특성화 사업’ 추진을 통해 ‘지방대 전문대가 상생 발전하는 고등교육 생태계 조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대학 구조조정의 필요성에 대해선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지만 발표된 안으로는 어떻게 고등교육 생태계의 구조가 개선될 것인지 불분명하다. 단순히 학과 전공별 특성화만으로는 구조조정이 될 수 없고 결국 학령인구 감소(2023년에는 현재보다 입학정원이 16만 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에 따른 대학 인원 감축으로 끝나고 말 가능성이 크다. 또한 획일적인 평가기준을 적용해 대학 간 서열화를 부추기고 대학의 수도권 집중을 촉진할 것이라는 우려 속에 지방대와 전문대의 반발을 사고 있다.

더 나아가 현 방안대로 하면 자칫 인문학이나 이과와 같은 기초 학문 분야는 고사되고 대학이 전문 학원처럼 취업을 위한 기술실용 위주로 전환되어 대학다움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대학은 질 향상보다는 교육부 평가 지표 맞추기에 급급하게 되고 학내 구성원 간의 갈등과 모순이 커져서 경쟁력 제고는커녕 대학 발전의 원동력을 잃어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차라리 이번에 통 크게 고등교육 생태계 구조 자체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금처럼 경직된 구조에 변화를 주어야 생태계가 활력을 얻을 수 있으며 편입학 제도의 활성화는 그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립대학에 한정해서 본다면 서울대 정원의 20%를 지방 국립대 출신 편입생으로 채우고 지방 국립대 정원의 30%를 전문대 출신 편입생으로 채우도록 하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까. 그럼 서울대, 지방대, 전문대 간의 좀 더 유기적이고 공생적인 관계가 맺어지지 않을까.

또한 학과나 전공의 특성화에 그치지 말고 더 나아가 좀 더 큰 시각에서 대학 자체의 특성화를 고려해 볼 수 있다. 미국의 인문대학처럼 학부 중심으로 재편하거나 대학 전체를 기초 분야 등으로 특성화할 경우 정부에서 적극 지원하는 등 좀 더 창의적이고 구조적인 고등교육 생태계 변화를 유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 평가도 같은 그룹끼리 해야 한다. 영어식 표현을 빌리자면 ‘오렌지와 애플’의 맛을 같은 잣대로 잴 수는 없다. 미국의 경우에도 대학 랭킹을 매길 때 전국대학, 지역대학, 인문대학 등으로 나누어서 한다. 어느 생태계든지 특정 강자가 지배하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칫 생태계 자체가 파괴되면 나중에 남는 자가 자기 자신을 잡아먹고 파멸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의 교육은 백년대계라 했다. 이번 기회에 백 년은 아니더라도 30년은 지속될 수 있는 상생의 고등교육 생태계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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