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김익두]조용필과 서정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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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두 전북대 국문과(공연학) 교수
김익두 전북대 국문과(공연학) 교수
한 시인이 자기 나름대로의 시 ‘세계’를 구축하려면, 적어도 그 시인 나름의 어떤 독자적인 개성을 토대로 한 각기 다른 여러 편의 시가 필요하다. 가수도 마찬가지다. 어떤 가수가 자기 나름대로의 ‘노래 세계’를 이룩하려면, 적어도 그 가수 나름의 어떤 독자적인 개성을 지닌 여러 편의 노래를 필요로 하며, 이러한 다양성과 풍부성은 그 가수의 부단한 ‘변화’와 자기부정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현대시인 중에 이런 인물을 뽑으라면 서슴없이 ‘미당 서정주’라고 말하고 싶다. 미당은 몸서리치는 원죄의 몸부림인 첫 시집 ‘화사’에서 마지막 노마드적 상상력의 세계를 노래한 ‘떠돌이의 시’에 이르기까지, 부단한 변화를 통한 자기 세계의 심화와 확장을 이룩했다.

미당 같은 인물을 대중가요 가수 중에서 택하라고 한다면 서슴없이 조용필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는 청성과 탁성을 넘나들며 팔색조와 같은 음색을 구사할 뿐만 아니라, 폭넓은 음폭과 두터운 켜를 가진 목소리 톤, 그리고 ‘시김새’라고 부르는 전통 민속음악의 성음과 창법들을 창조적으로 끌어와 자기만의 노래 세계를 구축했다.

가사·곡조 면에서는 수많은 작사가·작곡가를 동원하되, 자기 자신의 음악적 의도와 어법에 맞게 그들의 작업들을 튜닝하며, 음악 양식 면에서는 ‘포크송’을 제외한 거의 모든 양식, 발라드·트로트·민요·서양식 가곡·동요 등 다양한 음악 양식을 활용하고 있다. 또 반주 음악 면에서는 그와 평생을 동반해온 ‘위대한 탄생’이란 그룹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 대중가요계에서 ‘위대한 뮤지션’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요건들이다.

그는 우리의 전통적 정서인 ‘정한’을 음악 세계의 중심 정조로 삼고, 이것을 심화·확장하여 집단적 신명·동심·우정·소외·정치 사회·민족 역사 등의 문제에로까지 넓혀갔다. 그가 가진 ‘정한’의 정서는, 초기(1∼6집)의 폭발적 토로(대표곡 ‘창 밖의 여자’ ‘일편단심 민들레’), 중기(7∼12집)의 정한에 대한 응시와 관조(‘바람이 전하는 말’ ‘그 겨울의 찻집’)를 거쳐, 후기(13∼18집)의 정한의 내향화와 영성화(‘물결 속에서’ ‘오늘도’)의 세계에 도달한다. 최근에 나온 19집 ‘헬로(Hello)’는 지금까지 그가 어렵게 이룩해온 풍부하고 다양한 자기음악 세계를 또다시 과감하게 ‘해체’한 것은 물론이고 요즈음 새로 일어나고 있는 ‘케이팝(K-pop)’ 어법까지 과감하게 끌어들여, 지금까지와는 매우 다른 혁신적인 ‘변화’를 추구했다. 빠른 4분의 4박자 케이팝 기본 비트를 과감하게 수용하면서도 기존에 자기가 형성해 온 18집까지의 음악 세계를 다 ‘버리고’, 다시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선 것이다.

일반적으로, 환갑이 넘으면 새로운 ‘변화’에 주저하고, 그동안 이루어온 기존의 ‘업적’에 안주하고자 한다. “그동안 이룬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다른 음악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는 그의 편안하고도 용기 있는 말은 우리를 진정 ‘행복’하게 한다. 나이를 먹어도 새로운 ‘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 인간이 그가 처한 시대와 사회의 역경 속에서도, 그의 삶을 완성해 가는, ‘전인(全人)’에로의 눈물겨운 노력의 과정이다. 그것은 이제 여러 면에서, 우리의 삶을 ‘해원·상생·대동’으로 이끄는, 새로운 ‘치유적 전인(全人)’을 지향해 갈 것이다. ‘냉전 논리’에 의해 갈가리 찢긴 밑도 끝도 없는 허망한 좌우 대립이 아닌, 그런 깊은 상처들을 너그럽게 치유할, 새로운 ‘전인’이 그립다. 조용필과 그의 음악은 우리에게 그런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것 같아 기쁘다.

김익두 전북대 국문과(공연학) 교수
#조용필#서정주#시인#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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