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강승현]손님이 왕이면 직원도 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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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손님이 햄버거가 담긴 봉투를 직원의 얼굴에 던져 논란이 된 패스트푸드점. 유튜브 화면 캡처
최근 손님이 햄버거가 담긴 봉투를 직원의 얼굴에 던져 논란이 된 패스트푸드점. 유튜브 화면 캡처

강승현 산업2부 기자
강승현 산업2부 기자
“그냥 환불해 주는 게 낫습니다. 매뉴얼대로 했다가 불친절하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매너 소비(고객과 판매자 간 상호 존중)’를 취재하면서 현장 관계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어쩔 수 없다’였다. 지난해 10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매장에 상호 존중 공고문이 붙는 등 대응책이 잇따르고 있지만 속내는 사뭇 달라 보였다.

3년 전 구입한 물건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환불을 요청한 남성, 고객 이벤트 선정 기준을 문제 삼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수십 차례 악성 비방 글을 게시한 여성…. 이들 모두 ‘명분 없는 생떼’를 부렸지만 결국엔 원하는 보상을 받아냈다. 백화점 직원을 무릎 꿇게 하고 입에 담기 어려운 폭언을 1시간 넘게 퍼부은 여성은 철창신세 대신 상품권을 손에 쥐었다. 한 유통 기업 관계자는 “인터넷에 불친절하다고 나오면 일만 더 커져서 최근 강화된 매뉴얼이 있지만 웬만하면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낫다”고 했다.

이미지 훼손을 걱정하는 기업들에 갑질 대응 매뉴얼은 ‘방패’가 아닌 언제든 자신들을 겨눌 수 있는 ‘화살’이다. 온라인 소통 창구가 많아진 최근에는 소비자 불만이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까지 등장하며 화살촉이 더 날카로워졌다. 겉으로는 직원 보호를 내세웠지만 현장에선 적당히 넘어갈 때가 많다.

일본에는 ‘데이리긴시(出入り禁止)’ 문화가 있다. ‘출입금지’라는 뜻으로 식당 등에서 횡포를 부리거나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줄 경우 다시는 해당 점포를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블랙리스트’ 같은 것이다. 출입금지 통보를 받은 고객이 또 찾아와 소란을 피우면 경찰에 신고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소비자와 판매자 간 상호 존중이 없으면 거래를 할 수 없다’는 일본 특유의 문화가 반영됐다.

최근 국내 한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는 ‘알바를 리스펙(Respect·존중하다)하자’는 내용의 광고를 제작해 공감을 얻었다. 소비자 갑질을 비판하는 내용의 정부 공익광고도 나왔다. 백화점 곳곳에는 상호 존중 협조문이 붙었고, 일부 매장에는 ‘반말하면 나도 반말한다’ 같은 조금은 거친 글도 게시됐다.

근로자와 손님 사이의 균형을 찾자는 ‘워커밸(worker-customer balance)’ 바람이 조금씩 국내에도 부는 듯하다. 옛사람들은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렀다. ‘소비예의지국’의 길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곱고, 방망이가 가면 홍두깨가 온다. 상대 직원을 존중하는 매너 있는 소비자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강승현 산업2부 기자 byhuman@donga.com
#갑질#매너 소비#데이리긴시#워커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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