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우선]성취도 평가결과 공개 석달째 미루는 교육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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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11월, 12월, 1월, 2월….’

예년 같으면 11월 말 진즉 발표했을 자료인데, 어찌 된 일인지 교육부가 해가 바뀌도록 발표를 안 하는 자료가 있다. 바로 ‘2018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학교 교육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교육의 목표를 충분히 달성하고 있는지를 측정하기 위해 교육부가 매년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지필평가다. 중3과 고2를 대상으로 시행하는데, 결과엔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 △지역에 따른 학력 격차 등이 나타난다. 사실상 ‘학교 교육의 민낯’을 보여주기 때문에 교육계의 관심이 상당히 높은 자료다.

그런데 이번엔 왜 깜깜 무소식일까. 들리는 얘기로는 결과가 상당히 좋지 않은 모양이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거의 8∼9%에 육박했다는 말도 나온다. 과목에 대한 기본적 이해나 최소한의 학업도 안 되는 학생이 10명 중 1명이란 얘기니 교육부로서는 정말 발표 자체가 난감한 상황이다. 사실 성취도 평가는 현 정부 들어 아예 없어질 뻔했다. 2017년 5월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는 성취도 평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학교별로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 등이 공시돼 ‘학교 서열화’가 조장된다는 게 대외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교육계에서는 ‘진보 교육계가 학생들의 학력저하 현상이 공식 지표로 드러나는 걸 막으려고 평가 자체를 없애려 한다’는 해석도 많았다. 학교별로 제각각인 내신시험이나, ‘톱급’ 학생들에게 관심이 쏠리는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달리 성취도 평가는 전국 공통의 틀로, ‘중간 이하’의 학생 현황이 여실히 파악되는 유일한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성취도 평가는 학생보다 학교나 교육청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시험이었다. 학생들은 시험이 성적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 데다 문제도 평이해 별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반면에 학교나 교육청은 결과가 안 좋으면 ‘제대로 가르치고 있냐’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이 때문에 일부 교육학자는 공교육에 대한 ‘워치도그’ 차원에서라도 성취도 평가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대선 직후인 2017년 6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의견을 존중한다며 ‘성취도 평가를 전수에서 표집 평가로 변경하라’고 교육부에 제안한다. 전국 모든 중3과 고2를 대상으로 하던 시험을 이 중 3%만 표본으로 뽑아 평가하라는, 사실상의 지시였다. 이렇게 하면 학교별 성적 공시는 자연히 불가능해진다.

자문위의 ‘제안’은 상당히 거친 방식으로 현장에 적용됐다. 제안이 발표된 시점은 그해 학업성취도 평가가 치러지기 일주일 전이었는데, 이미 전국에 94만 명분의 시험지가 배포돼 있던 상황에서 3%를 뺀 나머지 시험지가 모두 폐기됐다. 평가를 준비해 온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바보’로, 국민들의 세금을 폐지로 만들어 버렸다.

2018년에도 학업성취도 평가는 이렇게 3% 학생만을 대상으로 해서 치러졌다. 교육부는 요즘 부랴부랴 이 결과와 함께 발표할 기초학력 강화 대책을 만드는 모양이다. 수치를 밝힐 땐 아마도 ‘3%만을 대상으로 해서 정확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는 해명도 덧붙일 것 같다. 아픈 곳을 부정하고 싶다고 진단장비 자체를 없애버리면 환자는 결국 더 큰 고통을 받거나 급기야 죽을 수도 있다. 불편하고 골치 아파도 병변을 드러내고 문제를 파악해야 정확한 치료법을 찾아 환자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 아닐까.

3%만 들여다봤는데도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의미도, 재미도 모른 채 학교 수업을 견디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아이들을 버릴 것인가. 교육당국의 기초학력 강화 대책이 면피용에 그친다면 한국 교육의 미래도 버리는 셈이 될 것이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기초학력#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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