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하준경]공시가 현실화, 현금 부족한 집주인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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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가 현실화는 과세 형평성 높여… 호가만 높다 해도 주택시장 영향
다만, 현금 유동성 적은 경우… 세금 낼 수 있게 선택지 줘야
납세 유예-현물 납부 대안 고민필요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부동산에서 보낸다. 집, 사무실, 공원, 학교, 병원, 심지어 무덤까지. 그러나 부동산의 바탕인 땅은 물이나 공기와 달리 유한한 자원이고, 사유지든 공유지든 소유자가 존재한다. 따라서 그 가격, 특히 과세 기준인 공시가격이 어떻게 정해지느냐가 땅의 활용과 자원배분의 효율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국에서 부동산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되지만, 공시가격을 정할 때는 전통사회의 셈법을 따르자는 이들이 많다. 죽을 때까지 거주하다가 대대손손 물려줄 집은 애초에 시장에 나온 것이 아니니 시장가격이 없다는 사람도 있고 거래도 안 되는데 공시가격을 왜 바꾸느냐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절대 팔지 않기로 마음먹은 집이라고 해도 누군가가 1000억 원을 줄 테니 팔라고 한다면 무시할 수 있을까. 그래도 팔지 않는다면, 거래는 안 됐더라도 이 집의 시가는 1000억 원이 넘는다고 보는 것이 시장원리고 과세도 이에 상응해 이뤄지는 것이 맞다. 내 집을 1000억 원에도 팔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1000억 원을 내고라도 이 집을 가지려는 사람에겐 높은 장벽이 된다. 즉, 결과적으로 호가였더라도 그것이 장벽이 돼 실제 자원배분에 영향을 줬다면 그 장벽의 높이가 초래한 사회적 비용에 맞게 세금이 부과되도록 공시가격을 조정하는 것이 옳다.

시장원리를 충실히 따른다면 매물로 나왔든 안 나왔든, 거래가 되건 안 되건 모든 부동산은 시가를 가지며 그것이 공시가격과 같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동산과 다른 자산들, 또 여러 부동산 간의 보유비용 체계와 가격 체계가 왜곡되고 과세 형평도 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시가격과 시가를 일치시키는 일은 현실에선 쉽지 않다. 무주택자보다는 집주인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 공시가격을 낮춰달라는 압력이 상존하고, 그렇게 세금을 깎아줄수록 시가가 높아져 양자의 괴리는 더 커진다. 불공정 과세뿐 아니라 비싼 땅값으로 인한 비효율적 개발, 생산비 상승, 도시 주거난 등의 문제도 따라온다. 이런 현상은 부패가 만연한 저개발국이나 가부장적 온정주의가 강한 나라에서 많이 발견된다. 미국 같은 자본주의 선진국은 거래가 뜸한 주택의 시가도 정확히 평가하려고 인근 시세를 적극 반영할 뿐 아니라 해당 주택에 실사를 나가 창밖 전망까지 확인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공시가격 현실화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게 해 효율을 높이면서 과세 형평도 높이는 친(親)시장적 개혁이다. 하지만 온정주의가 시장원리로 바뀌는 중간에서 충격을 받는 이들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이행 과정을 잘 관리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특히 비싼 집을 한 채 갖고 있으면서 현금 소득이 적은 집주인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줄 필요가 있다. 경제원리로만 본다면 자기 집을 임대했더라면 받을 수 있었을 고액의 임대료를 스스로 소비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저소득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당장 현금이 부족한 상황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물론 이들을 위해 보유세 증가분을 제한하거나 고령자에게 세금을 깎아주는 등의 우대장치가 있다. 하지만 어느 임계치를 넘게 되면 이들의 현실적 선택지는 집을 매각하거나, 대출이나 ‘가족 내 사금융’, 즉 자녀에게 상속을 약속하는 대신 현금지원을 받는 데 의존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최후에는 조세저항에 나서는 것밖에 없다. 세율 인상 때문이 아니라 시가 상승 때문에 세금이 올라도 대안이 마땅치 않으면 저항 쪽으로 기울기 쉽다.

따라서 과도기적으로 납세자의 현금 유동성 문제를 고려한 대책도 함께 내놓아야 한다. 예컨대 고령자에게 보유세 납부를 일부 유예해주고 나중에 집을 처분하거나 상속할 때 낼 수 있게 하거나, 고가 주택이라도 지분 일부를 담보로 주택연금 방식을 적용해 세금 낼 정도의 현금흐름을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또는 매년 주택 지분 일부를 물납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다양한 옵션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때 정부나 금융부문이 위험을 일부 떠안더라도 과도기 관리 비용으로 봐야 한다. 공시가격 현실화는 경제 선진화를 위한 필수 과제이므로 멈춰서는 안 되지만 집값이 안정돼 보유세가 큰 부담이 되지 않을 때까지는 다양한 선택지를 마련해줘야 한다.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공시가 현실화#주택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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