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의 과학 에세이]나방 “새들아 눈물을 감추지 말아다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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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김재호 과학평론가
눈물을 훔치는 건 사람만이 아니었다. 사람은 감정의 정화나 하품 같은 생리 현상, 외부의 강한 자극의 결과로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안구의 건조를 막기 위해 언제나 조금씩 분비되고 있다. 특히 남몰래 눈물을 닦는 행동은 상대방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본능적 행동에 가깝다. 그런데 곤충도 다른 생물의 눈물 혹은 분비물을 훔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놀라운 건 포식자한테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생존을 위해 눈물을 훔쳤다.

최근 ‘사이언스’엔 새의 눈물을 훔치는 나방의 모습이 공개됐다. 아마존의 잠자는 새 목덜미 뒤에서 나방은 주둥이를 빼 새의 눈 한쪽에 꽂아 눈물을 마시고 있었다. 눈물을 훔치는 모습은 여러 차례 포착됐다. 빠르게 날아가는 새를 공략하긴 어렵다. 그래서 새의 신진대사가 떨어지는 밤에 나방이 남몰래 자리한 것이다. 나방은 야행성이다. 그런데 나방은 새한테 잡아먹힐 수 있다. 그럼에도 나방이 새의 눈물을 빨아 먹는 건 나트륨이나 알부민(단백질) 같은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서다. 목숨을 건 모험이 눈물겹다.

나방이 거북이나 악어의 눈물을 훔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새의 눈물을 훔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2007년 아프리카에서 처음 보고됐고, 2015년에 콜롬비아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포착됐다. 눈물을 훔치는 경우는 주로 움직임이 느린 동물들이나 신진대사가 느려지는 상황에서 나타났다. 또한 홍수가 잦은 열대성 기후의 아마존 등에서 종종 발견됐다. 그 이유는 그 지역 퇴적물에서 영양분이 많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2012년 에콰도르 국립공원은 벌이 거북이 눈물을 훔치는 장면을 소개했다. 벌은 심지어 사람 속눈썹 밑에 들러붙어 눈물을 빤다.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눈물을 훔치는 경우도 있다. 그 시간은 대략 0.5∼2.5분 정도다. 다리에 꽃가루를 충분히 묻히지 못하는 경우에 눈물을 잘 빨 수 있도록 일부 벌들이 진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나비 역시 잠자는 악어의 눈물을 훔친다. 미네랄 때문이다. 나비나 나방류는 동물의 피, 눈물, 땀을 섭취하는 걸로 익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나방이 날아든다고 자신의 땀이나 눈물을 공양하면 안 될 듯싶다. 왜냐하면 병원균이 전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나방이 피를 빨아 먹을 수도 있다. 실제로 1968년 말레이반도에선 상처 난 부위의 피를 빠는 나방이 처음으로 보고된 바 있다.

곤충류는 포식자한테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나방은 왜 꼭 새의 눈물로 염분이나 단백질을 섭취해야 할까? 바닷가 바위나 다른 곳에서 섭취하면 안 될까? 물론 나비와 같은 곤충류들은 진흙 웅덩이에서 영양소를 섭취한다. 하지만 너무 부족할 경우가 많아, 다른 동물의 땀이나 눈물, 혈액에서 미네랄과 단백질 등을 보충하는 것이다.

동물원에 가면 미네랄 원석을 메달아 동물들이 핥도록 하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염분은 모든 생물에게 필수다. 그래서 코끼리는 염분이 묻은 암석을 삼킨다. 곤충이나 동물들은 분변에서 나트륨이나 단백질 등을 섭취하기도 한다. 새똥을 먹는 나비나 사체에 모여든 벌 떼는 살기 위해 때론 더럽고 쓴 것들을 먹는다. 코알라는 자기 새끼에게 대변을 먹여 생존하게끔 한다.

몸을 구성하는 물질은 체내에서 스스로 소멸되지만 땀, 눈물, 피부 탈락 등으로 외부 환경에 배출되기도 한다. 혈장과 세포 내외를 구성하는 체액의 경우 대부분 물이지만 나트륨, 칼륨, 염소 등의 이온이 많다. 염 이온은 세포막의 나트륨-칼륨 펌프를 활성화해 세포 소통에 기여한다. 이로써 신경자극을 전달하고, 근육을 수축시키고, 심장 기능을 올바르게 수행하도록 한다. 염분이 부족하면 이 반대의 상황들이 발생한다. 염분 부족의 가장 큰 문제는 몸에서 수분 흡수가 어려워 탈수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곤충도 동물이기에 신경세포를 지니며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염이 필수다. 이끼 위를 지나다니는 애벌레나 돌좀의 체액을 빨아 필수 영양분을 보충하는 이끼개미귀신, 달팽이 체액을 먹는 반딧불이 애벌레, 잡은 먹이가 미라가 될 때까지 체액을 흡수하는 거미, 동물의 피를 빠는 모기 등은 염과 단백질을 얻으려는 노력들이다. 짚신벌레조차 이온으로 인한 세포막의 전기적 변화가 없으면 섬모를 움직이지 못한다. 나비와 나방류는 다른 곤충을 잡아 체액을 빨 정도의 힘이 없다. 그래서 동물의 분비물을 빨아 영양분을 보충한다.

나방이 새의 눈물을 훔치는 건 흔한 발견이 아니고 관련 연구가 거의 없다. 즉 나방이 언제나 새의 눈물을 훔쳐 먹는다고 볼 수 없다. 다만, 나방의 눈물겨운 생존법이 경이로울 뿐이다.
 
김재호 과학평론가
#나방#새#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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