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모님, 누가 고교 학군 보고 ‘아리팍’ 가요? 촌스럽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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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기자의 現場에서]‘평당 1억’ 소문난 반포 아크로리버파크

서울 반포 한강공원에서 바라본 반포 아크로리버파크 단지. 이 아파트가 선도 효과를 일으켜 다른 곳도 실제 평당 1억 원 시대를 열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정부의 이번 9·13부동산대책이 성공할지도 향후 이 아파트 가격을 보면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서울 반포 한강공원에서 바라본 반포 아크로리버파크 단지. 이 아파트가 선도 효과를 일으켜 다른 곳도 실제 평당 1억 원 시대를 열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정부의 이번 9·13부동산대책이 성공할지도 향후 이 아파트 가격을 보면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 불어나는 강물을 간신히 버티던 방죽이 마침내 무너진 걸까. 최근 서울 서초구 반포 아크로리버파크(ACRO RIVER PARK) 24평(전용면적 59m²)이 평당 1억 원이 넘는 24억5000만 원에 팔렸다는 보도가 나면서 온 나라가 부동산 패닉에 빠졌다(물론 현재까지는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정부가 9·13부동산대책을 서두른 데는 이 아파트가 준 심리적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세간이 아파트를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극단적이다. 가진 자는 이곳이 더 올라 다른 집값도 올려주길 바라고, 없는 사람은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든 현실에 가슴을 쳤다. 13일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갔다. 》
 
이진구 기자
이진구 기자
“이러다가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또 올지도 모르겠네요.”

주민 한모 씨(41)는 “2016년 입주 때 아리팍(아크로리버파크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 비싼 게 엄청나게 화제가 되니까 중국인 관광객들이 버스를 전세 내 단체로 와서 구경하고 사진 찍고 갔다”며 “조만간 같은 장면을 또 보게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과 달리 주민들과 공인중개사사무소들은 극도로 예민해 있었다. 지인이 자신만만하게 “소개해주겠다”고 한 단지 내 부동산중개사무소 대표는 취재 요청을 받자마자 손사래를 치며 난색을 표했다. 주민 양모 씨(43)는 “불똥이 이상하게 튀어 혹시나 자기 아파트 대금 출처까지 탈탈 털리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24억5000만 원에 팔렸다는 계약이 실제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는 계약 후 60일 이내에만 신고하면 되기 때문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구매자가 법인이라 굳이 값을 깎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말도 돌고 있다.

끝내 확인이 안 될 수도 있다. 계약금만 낸 상태에서 소문이 났고, 이후 계약이 깨졌다면 신고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은 국토부가 관리하지만 운영은 한국감정원이 한다. 한국감정원 측은 “검증 과정에서 허위신고나 업·다운계약이 의심되면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만약 실제 거래가 있었다면 해당 아파트는 한강에 가장 가까워 최적의 조망권을 가진 104, 111동 중 어느 한 곳일 가능성이 높다. 24평은 이 두 동 외에도 101, 102, 107, 108, 113동에도 있지만 모두 단지 뒤쪽이라 전망이 그리 좋지 않다.

이 동네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A 씨의 말.(취재에는 여자 지인이 동행했고 질문은 그가 했다)

―진짜 평당 1억 원인가요? 이 동네가….

“언론에서는 그렇게 말하는데 내가 아는 24평은 22억 원 정도예요. 34평은 27억∼28억 원에 나오다가 30억 원에 거래됐다는 말이 나오니까 집주인들이 거둬들였어요. 전망이 좋으면 더 나가고요. 지금은 매물이 다 들어갔어요. 대신 전세는 잘 나가요. 24평은 11억∼11억5000만 원, 34평은 14억∼15억5000만 원 정도예요.”

―집을 볼 수 있어요?

“24평은 A∼E형, 34평은 A∼G형 등 5, 7가지가 있어요. 뭐가 나올 줄 알고 미리 봐요? 기다렸다가 나온 거 보고 사는 거죠. 24평 A형은 방 3개에 욕실 2개, 보조주방이 있고 드레스룸이 있어요. 천장도 주변 아파트보다 훨씬 높아 작은 평수도 넓어 보여요.”

인근 다른 아파트의 층 높이가 230cm인 반면 이곳은 260∼270cm다.

―비싸도 여기 사는 게 나아요, 아니면 인근 다른 아파트가 나아요.

“지금 이주가 시작된 근처 반포 경남3차 아파트 33평이 26억∼27억 원이에요. 여기에 추가 분담금 내고, 이주비 들고 하면 여기 사는 게 낫죠. 하지만 좀 기다리세요. 지금은 물건이 너무 없으니까 주인이 부르는 값에 살 수밖에 없잖아요. 24억5000만 원에 팔린 게 사실이면 다른 집주인은 25억 원을 부를 텐데…. 사모님, 그 값에 사실 거예요? 사시는 입장에서는 아니잖아요.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전반적으로 손본다니까 그거 보고 사는 게 나아요.” (대책이 몇 번이나 나와도 계속 오르니까…) “계속 오를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대책이 나온 순간에는 값이 잠시 주춤하는 게 있어요. 그때를 보는 게 나아요. 지금 사면 값 올리는 것밖에 없잖아요.”

104, 111동 붉은색 부분이 평당 1억 원에 팔린 것으로 추정되는 24평이다.
104, 111동 붉은색 부분이 평당 1억 원에 팔린 것으로 추정되는 24평이다.
―주민들은 완전 봉 잡은 거네요.

“여기가 옛날 5층짜리 한신1차 아파트를 재건축한 곳인데 한신 32, 33평에서 아리팍 52평, 한신 28평에서 45평으로 가면 무상이었어요. 만약 30평대에서 34평으로 가면 10억 원 가까이 환급해줬고요.” (10억 원을 돌려줬다고요?) “그때는 그랬어요. 그렇다고 다 떼돈 번 건 아니에요.” (왜요?) “분양 때(2013년 1차) 평균 청약경쟁률은 19 대 1이나 됐지만 실제로는 60%가 계약을 포기했어요. 부동산 상황이 워낙 안 좋은 데다 평당 4000만 원이 넘는, 당시 국내 최고 분양가가 너무 부담이 됐던 거죠. 차례를 받은 대기자 중에도 더 오르기 힘들다고 생각해 안 산 사람이 많았으니까요. 나한테 온 사람 중에는 프리미엄을 300만 원만 주면 넘기겠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오죽하면 그때 정부가 부양책을 썼겠어요.”

―여기가 왜 그렇게 비싼 거예요.

“새 아파트고…. 제가 보기에는 근처에 있는 반포·계성초등학교와 외국인학교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여기 외국인 회사 간부나 외국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이 많아요.” (고등학교는요?) “아, 사모님, 촌스럽게 요즘 누가 고등학교 학군 보고 집 사요? 초·중학교 보지. 고등학교는 외고 과학고 가면 되고 일반고도 1, 2, 3지망이어서 돌려서 가는데요.”

계성초등학교는 손꼽히는 사립 명문초등학교.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있는 외국인학교(덜위치칼리지 서울영국학교)는 영국계 외국인 학교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 단지 안에는 구립 어린이집이 3개나 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 아파트의 또 하나 ‘대박’은 2013년 12월 1차 분양으로 24, 34평을 받은 사람들이 5년 안에 집을 팔 경우 양도소득세를 전액 면제받는다는 점이다. 2013년 부동산 경기가 침체의 늪에 빠지자 정부는 2013년 4월 1일부터 그해 12월 31일까지 6억 원 이하 또는 주택의 연면적(공동주택 및 오피스텔은 전용면적)이 85m² 이하인 주택에 대해서는 취득 후 5년 내에 발생하는 양도소득세를 전액 감면해 주기로 했다. 아리팍 1차 분양은 2013년 12월, 2차 분양은 이듬해에 있었다. 아리팍은 2016년 입주했기 때문에 2021년까지만 팔면 혜택을 볼 수 있다. 물론 다른 지역 아파트에도 해당되지만 당시 부동산 경기가 워낙 안 좋아 실제 이 혜택을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아파트 34평(공급면적 112.84m², 전용면적 84.97m²)에 사는 B 씨는 당시 1차 분양에 당첨돼 입주했다. 이 평형은 최근 30억 원에 팔렸다는 소문도 났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서는 층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7월 21∼31일 사이에 팔린 27억8000만 원(14층)이 가장 비쌌다.

―분양받을 때는 얼마였나요.

“이것저것 포함해서 13억 원 정도요. 모아 놓은 거와 대출 받을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받고….” (당시도 너무 비싸서 말이 안 된다고 했다던데요?) “네. 그래서 계약 포기한 사람도 많았어요. 왜 계약하느냐고.” (오를 줄 안 건가요?) “그런 건 아니고…. ‘못 먹어도 고(go)’ 하자는 생각에….”

국세청 양도소득세 모의 계산을 통해 이 집을 27억8000만 원에 팔았을 경우 양도소득세가 얼마가 나올지 추산해 봤다. 동네의 민감한 분위기를 우려한 그는 정확한 분양가와 당시 지불한 세금, 필요경비 등은 말하지 않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과세표준 42%를 적용하니 양도세액이 약 3억8000만 원이 나왔다. 헐∼.

―관리비는 얼마나 나옵니까. 조경이나 공공시설이 좋아서 좀 나올 것 같은데….

“매달 30만 원 정도? 이번 여름에는 에어컨을 많이 틀어서 전기료가 5만 원 정도 나오던 것이 13만 원 나오더라고요.” (몇 대를 틀었는데요?) “5대 있는데 3대만 틀었지요. 에너지 효율이 좋아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많이 안 나온 것 같던데….” (인상이 참 좋아 보이십니다) “하하하 뭘…. 고지서도 보여드릴까요?”

이 집 관리비(올 2월)를 인근 서초4동 삼풍아파트 34평(공급면적 114.3m²) 2월과 비교했다. 총액은 아리팍이 34만120원, 삼풍은 23만1280원으로 아리팍이 10만 원 정도 더 나왔다. 전기료는 아리팍 8만310원, 삼풍 3만6890원. 난방비는 거꾸로 삼풍이 15만5640원, 아리팍은 3만5020원이었는데 삼풍은 중앙난방식이고 1988년 입주한 30년 된 아파트라 열효율이 낮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리팍은 개별난방이다. 이 집 부부는 맞벌이라 퇴근 때까지 난방을 안 했다. 경비비도 삼풍 5만4250원, 아리팍 4만4750원인데 동마다 배치된 경비 인력이 없는 아리팍과 달리 삼풍은 동마다 경비 인력이 6∼8명씩 교대 근무를 한다. 이 밖에 아리팍은 커뮤니티 기본비 2만 원, 커뮤니티 운영비 9080원을 받고 있었다.

최근 평당 1억 원 이상에 팔렸다는 이 집 때문에 연쇄 폭등현상이 일어날지, 아니면 그것이 최적의 조건을 갖춘 해당 집만의 값으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지금은 놀라서 아리팍의 모든 아파트가 마치 평당 1억 원이 될 것처럼 보이지만 지난달 초만 해도 34평은 20억 원, 45평은 31억8000만 원에 팔린 집도 있었다. 평당 5800만 원, 7000만 원 수준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랄 수는 있지만 억대 솥뚜껑을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9·13부동산대책#아파트#집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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