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의 과학에세이]은하가 넓어질수록 ‘파란 점’은 더 창백해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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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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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과학평론가
김재호 과학평론가
당신이 가본 가장 먼 곳은 어디인가요?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은 어디일까요? 이 질문은 일본의 한 학교 밖 수학 수업에서 제시된 물음이라고 한다. 교재의 복잡한 기호나 숫자 없이 독특한 방법으로 수학을 학습한다는 얘기가 흥미롭다. 실제로 가장 먼 곳을 그리다 보면, 길이와 공간의 개념들을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다. 수학은 계산이 아니라 상상력으로부터 출발한다.

내가 가장 멀리 상상할 수 있는 곳은 아마도 은하수(우리 은하)가 아닐까 싶다. 20년 전 전북 장수군에서 늦은 밤에 바라본 은하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최근 ‘천체학과 천체물리학’ 학술지엔 은하수의 길이가 우리가 알던 사실보다 더 길다는 연구결과가 공개됐다. 은하수의 지름을 가로지르려면 20만 광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자가 예전에 밤하늘에서 상상한 이상으로 별이 많았고, 은하수는 훨씬 더 광활했던 셈이다. 그렇다고 은하수가 팽창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전 연구는 은하수를 가로지르려면 10만∼16만 광년이 걸린다고 가정했다. 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로서 대략 6조 마일 혹은 9조6000억 km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번 연구결과에 따르면 빛의 속도로 20만 년을 가야 은하수를 가로지를 수 있다. 지구의 지름은 약 1만2700km다. 태양은 지름이 140만 km 정도로 지구의 약 110배이다. 따라서 은하수는 태양 지름의 약 1조3700억 배이다. 천문학자들은 종종 은하의 범위를 수정해왔다. 일례로 안드로메다은하의 천체는 우리 은하계와 거의 같은 질량임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로써 두 은하계가 40억 년 내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번 연구는 ‘은하계는 어떨 것이다’고 가정하는 선험적 모델을 이용한 게 아니다. 단지 별들에 대한 무수히 많은 데이터만 분석했다. 연구진은 은하수 은하면(막대 모양) 안에 있는 금속 다발과 무거운 원소들을 은하헤일로에 있는 것들과 비교했다. 별의 스펙트럼들과 속도, 화학 성분 등을 살펴본 것이다. 별의 스펙트럼으로 별의 온도, 크기(질량), 운동을 알 수 있다. 색의 패턴을 분석함으로써 별에 어떤 요소들이 현재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은하헤일로는 구 모양의 은하 무리로서 나선 은하의 나선 팔을 포함한다. 은하헤일로는 늙은 별들이 모인 구상성단과 별들의 잔해나 가스, 암흑 물질 등이 은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모든 나선 은하는 은하 내 별들의 주요 부분을 수용하는 매우 얇은 회전 원을 가진다. 이는 원반부로 불린다. 즉, 은하의 중심부가 부푼 엄청나게 큰 원반 모양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원반부의 크기는 제한돼 있기에 이 원반부 지름을 넘어 가면 별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즉, 은하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별들이 모인 밀도가 줄어드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원반부 밖에도 별이 많이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은하수엔 태양과 태양계 행성을 포함해 1000억∼1500억 개의 별이 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많이 보아온 우리 은하의 원반부 훨씬 밖에도 별이 존재할 확률은 95.4∼99.7%였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태양이 은하수 반경의 절반 내에서 은하의 중심을 공전한다고 가정했다. 특히 은하 중심부에서 태양까지 거리에 2배 이상이 되는 거리엔 별이 많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구만 하더라도 은하수의 중심으로부터 3만 광년 떨어져 있다. 허나 이번 연구결과에 따르면 은하 중심으로부터 태양까지의 거리보다 3, 4배에 이르는 거리에도 별이 많이 존재한다.

은하수의 나이는 132억 년으로 추정된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서기 8년에 출판된 신화 전설집 ‘메타모르포세스(변태)’에서 “하늘이 맑을 때 드러나는, 광채가 유명한 ‘은하수’는 저 높은 곳을 가로지른다”라고 적은 바 있다. 처음으로 ‘은하수(Milky Way)’가 언급된 것이다. 은하수에 대한 의문과 이해는 신화나 문학 속에서 나타나다가, 르네상스를 맞이해 구체적 모습이 드러난다. 우주의 중심은 지구에서 태양으로, 태양에서 은하로 서서히 옮겨 왔다.

은하는 별들의 집단 모임이다. 별들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모여 있느냐에 따라 은하의 지름은 달라진다. 은하수는 수천억 개의 은하 중 하나이다. 그 은하수의 지름이 커진다는 건 더 많은 별이 모여 있다는 뜻이다. 의미가 좀 더 각별해진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상상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어졌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일이다. 은하수의 지름이 늘어나는 만큼 상상의 힘 역시 커진다.
 
김재호 과학평론가
#은하수#별#은하수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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