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전쟁史]<15>고지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1953년 6월 25일. 6·25전쟁 발발 3주년을 기념이나 하듯이 철의 삼각지에 있던 529고지에서 국군 3사단과 중공군 67군의 격전이 벌어졌다. 1953년 4월부터 휴전회담이 시작됐지만, 1953년 5월부터 여름까지 중공군은 대대적인 하계 공세를 펼쳤다.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 철의 삼각지 일대에서 밀고 밀리는 격전이 벌어졌다. 당시 고지전은 인간에게 용기의 한계, 인내의 한계, 분노의 한계를 시험하는 전투였다. 우리나라 산은 고지에서 보면 전망이 시원하지만, 막상 전투가 벌어지면 바위와 경사 때문에 아래 산비탈이 보이지 않는다. 어찌 보면 좋은 엄폐물을 제공하지만 공격하는 쪽이나 수비하는 쪽이나 포탄과 총알을 뚫고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돌진한다. 그리고 50m 정도 근접하면 총과 수류탄을 동원한 난전을 벌여야 한다.

중공군은 공격할 때는 하늘을 가릴 정도로 개인당 수류탄 수십 발을 던졌다. 그들이 위에 있을 때는 수류탄을 굴려 보냈는데, 이것도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어느 쪽이든 공격에는 막대한 피해와 용기를 요구했고, 기적적으로 고지를 점거하면 거의 탈진했다. 그 때문에 고지를 빼앗긴 그 순간이 역습의 적기가 된다. 이것이 고지전의 악몽이다. 승리한 쪽이나 패배한 쪽이나 바로 결사의 각오로 2차전을 벌여야 한다. 그렇게 젊은 생명들이 고통과 분노 속에서 스러져 갔다.

지금도 철의 삼각지는 산이 깨어지고, 갈라진 채로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격전이 벌어진 곳은 오히려 낮은 산지인데, 좁고 가파르고 숨을 곳도 없는 매끈한 능선일수록 처절한 피의 기억을 머금고 있다. 6·25전쟁의 원인에 대해 누구는 냉전의 희생이었다고 하고, 누구는 내전이었다고 한다. 나는 두 가지 요인이 다 있다고 생각한다. 학자들은 가끔 불필요한 고지전을 벌인다. 고지에는 한 개의 깃발밖에 꽂을 수 없지만, 사회는 언제나 복합적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엉터리 진단으로 그들의 죽음과 고통을 왜곡하고, 제멋대로 선악을 나누는 것이다. 역사의 교훈은 모두 중요하지만 피로 쓴 교훈은 더욱 겸손하고 현명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임용한 역사학자
#고지전#6·25전쟁#529고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