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의 미술시간]<14>페인트를 쏟아부은 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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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폴록 ‘넘버 32’ 1950년.
잭슨 폴록 ‘넘버 32’ 1950년.
‘미술은 표절이 아니면 혁명이다.’ 프랑스 후기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이 한 말이다. 미술은 기존의 관습을 반복하는 표절 아니면 이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는 혁명만이 있다는 의미다. 미술의 역사는 수많은 혁명적인 예술가들에 의해 쓰여 왔다. 잭슨 폴록 역시 서양미술의 오랜 전통과 관념을 깬 혁명가 중의 혁명가였다.

1943년 7월, 목수로 일하던 폴록은 부유한 컬렉터이자 딜러였던 페기 구겐하임과 전속 작가 계약을 맺으면서 전업 화가가 됐다. 구겐하임은 맨 먼저 자신의 뉴욕 집 내부 벽화를 의뢰했다. 마르셀 뒤샹의 제안으로 폴록은 실제 벽이 아닌 캔버스 천 위에 그림을 그린 후 벽에 부착했다.

이 벽화 작업을 계기로 폴록은 서구 회화의 전통과 완전히 결별했다. 우선 그는 이젤, 팔레트, 유화물감 등 전통적인 회화의 재료들을 버렸다. 그 대신 깡통, 나무 막대, 가정용 에나멜 페인트 등을 선택했다. 재료뿐 아니라 그림을 제작하는 방식도 완전히 새로웠다. 두루마리 캔버스 천을 바닥에 죽 펼쳐 놓은 후 깡통에 든 페인트를 나무막대나 낡은 붓으로 흩뿌리고 끼얹고 던지고 쏟아부었다. 폴록은 거대한 화면을 메우기 위해 마치 춤을 추듯 온 몸을 움직이며 작업했다. 어떻게 보면 이건 회화가 아니라 캔버스 위의 행위예술 같았다. 또한 상하좌우가 없는 ‘올오버(All over) 페인팅’이었다. 미국 예술비평가 로젠버그가 이를 ‘액션 페인팅’이라 명명하면서 폴록은 액션 페인팅의 선구자가 됐다.

“나는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작업할 때 더 편안함을 느낀다. 이렇게 작업을 하면 캔버스 주위를 걸으며 사방에서 작업할 수 있고 글자 그대로 그림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림과 더 가깝게 느껴지고, 내가 그림의 일부가 된 것 같다.” 1947년 폴록이 한 말이다. 이렇게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그림과 하나가 됐고, 이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혁명적인 미술을 제시해 20세기 미술의 아이콘이 됐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잭슨 폴록#넘버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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