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전쟁史]<14>분노 폭발인가 욕망의 질곡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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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7월 14일은 프랑스 최대 국경일인 ‘바스티유의 날’이다. 1789년 파리의 군중은 정치범으로 수감된 사람을 구하거나 요새에 비축된 무기를 탈취하려고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정작 감옥에는 정치범이 없었고 일반 죄수도 7명뿐이었지만, 참혹한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건은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외국과 벌이는 싸움만이 전쟁이 아니다. 내전은 그 결과가 아무리 위대한 혁명이라고 해도 더 참혹하고, 후유증도 크다. 프랑스 혁명의 원인은 오랫동안 앙시앵레짐(구체제)의 모순과 농부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 착취가 원인이었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딱 한 세대 뒤에 살았던 프랑스 정치가이자 사회학자인 알렉시 드 토크빌(1805∼1859)은 전혀 다르게 해석했다. 토크빌은 프랑스 구체제의 불합리와 모순은 인정하지만 프랑스에서 구체제의 모순은 해소돼 가고 있었고, 그 점에서는 유럽의 어떤 나라들보다도 선진적이었다고 주장한다. 봉건제의 기득권 세력이었던 귀족들은 거의 권력을 상실했고, 쇠퇴하고 있었다. 그 자리를 대체하는 관료들이 부패해 매관매직이 만연했지만, 그것도 생각처럼 악마적 상황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민중은 무엇 때문에 분노한 것일까.

토크빌은 오히려 경제 성장과 부의 왜곡을 지적했다. 18세기 프랑스는 부유해졌지만 농업 의존도가 여전히 높았다. 투자처를 잃은 부는 상공업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관습대로 토지에 집중됐다. 농민들도 토지에 집착하면서 과도한 분할 상속이 이뤄졌다. 토지는 쪼개지고 쪼개졌으며 한편에서는 또 집중됐다. 이것이 농민의 빈궁화와 분노를 낳았고 혁명으로 폭발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토크빌의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앙시앵레짐이 사회적 정치적 요인이었다면 토크빌의 주장은 경제적 측면의 주장이다. 프랑스 혁명처럼 거대한 사건을 하나의 원인으로 재단할 수는 없다. 실제 프랑스 혁명에는 5개의 서로 다른 혁명이 있었다고 분석한 학자도 있다. 구체제에 대한 분노는 현상이다. 현상을 지적해 사람들을 설득하고 선동하기는 쉽다. 그러나 의사가 증세에만 집착하면 치료를 망친다. 우리 사회도 이젠 대증요법이 아닌 진정한 의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임용한 역사학자
#바스티유의 날#프랑스#토크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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