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기자의 對話]“채용 청탁은 남의 인생을 도적질하는 거 아임니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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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곤 강원랜드 사장

모두 다는 아닐지라도 518명 중 493명이 청탁 대상자라면 아마도 단군 이래 최대의 부정 채용 규모가 아닐까. 문태곤 강원랜드 사장은 “소위 ‘빽’이 없어 붙고도 떨어졌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채용비리로 채용이 취소된 사람들이 소송 등 법적 절차를 밟는다고 해도 다시 받아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랜드 제공
모두 다는 아닐지라도 518명 중 493명이 청탁 대상자라면 아마도 단군 이래 최대의 부정 채용 규모가 아닐까. 문태곤 강원랜드 사장은 “소위 ‘빽’이 없어 붙고도 떨어졌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채용비리로 채용이 취소된 사람들이 소송 등 법적 절차를 밟는다고 해도 다시 받아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랜드 제공

《 지난해 9월 드러난 강원랜드의 2013년 부정 채용 실태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합격자 518명 중 95%인 493명이 별도로 관리된 청탁 대상자였다. 점수를 조작한 것은 물론이고 당시 최흥집 사장은 부탁받은 사람이 필기시험에서 떨어지자 아예 이 시험을 점수에 반영하지 못하도록 했다. 검찰은 인사 청탁을 한 청탁자를 기소하지 않아 부실 수사 의혹을 받았고, 급기야 외압이 있었다는 현직 검사의 폭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 융단 폭격을 맞은 강원랜드에 구원투수로 등판한 문태곤 사장(61)은 “부정 합격자 225명의 채용을 취소하고 현재 당시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 특별채용을 진행 중”이라며 “하지만 무슨 말로 그분들의 아픔을 달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감사원 출신인 문 사장은 노무현 정부 말기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을 지냈으며, 2010년 감사원 제2사무차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났다. 》
 
지난해 12월 취임 연설 중인 문태곤 사장.
지난해 12월 취임 연설 중인 문태곤 사장.
이진구 기자
이진구 기자

―청탁 대상자 493명 중 225명만 채용을 취소한 이유가 뭔가.

“493명은 당시 청탁이 들어온 사람 전부다. 이 중에 검찰 수사 결과 청탁과 서류 및 점수 조작 등 부정 채용의 인과관계가 인정된 사람이 225명이었다. 나머지는 청탁은 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부정 합격으로 이어졌는지, 아니면 자기 실력으로 붙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확인할 수 없는 사람들까지 채용을 취소할 수는 없었다.”

―당시 임의로 채용 인원을 대폭 늘려 뽑았는데 안 들킬 줄 알았을까.

“나도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일단 뽑아 놓고 나서 떼쓰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에 카지노가 증설돼 인력을 확충할 필요는 있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는 약 700명이 필요하다고 봤지만 최종적으로 500여 명을 뽑기로 했다. 문제는 이걸 기획재정부와 정원 협의를 한 뒤에 승인을 받고 뽑아야 했는데 안 하고 채용한 거다. 결국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과정에서 문제가 벌어졌다.” (정규직 전환이라니?) “이들은 2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정규직(교육생)이었다. 2015년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기재부에서 기본 정원에 추가로 45명만 증원을 허용했다. 200여 명이 집단 해고를 당할 판이 되자 지역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난리가 났다.”

강원랜드 측은 “2014년까지는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정원을 초과해 채용해도 페널티가 없었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기재부와 협의하지 않고도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부정채용이 아니라 집단 해고가 문제였다는 말인가.

“그렇다. 2014년 말 드라마 ‘미생’이 엄청나게 히트를 쳤는데 그게 큰 영향을 미쳤다. 한 명도 아니고 수백 명이 한꺼번에 ‘미생’이 되게 생겼으니까.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을 구제하자는 쪽으로 사회 분위기가 흘렀고, 결국 기재부가 200여 명을 추가 증원해줬다. 당시에는 굉장히 잘한 일로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어쩌다 부정 채용이 드러난 건가?) “기재부 입장에서는 화가 난 거지. 정원 협의도 안 하고 일단 뽑아놓고 정규직 전환시키라고 들이민 꼴이니까…. 그래서 우리 상급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진상을 파악해 달라고 요구했고, 산업부가 다시 우리에게 내부감사를 시켰다. 최 전 사장 후임인 함승희 사장 때다. 그랬더니 채용비리가 드러났고, 관할인 춘천지검에 수사 의뢰를 한 거다.”

―우리나라는 감사받느라 일 못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감사가 많다. 내부감사야 그렇다 쳐도 2013년부터 작년까지 5년 동안 상급기관에 감사원, 국정감사를 다 어떻게 피해간 건가.

“그게…, 거참…. 내가 감사원 출신이지만, 처음부터 인사 쪽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그 정도까지 알기 어렵다. 감사도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시작하는 것이다. 채용 비리란 게 보통 극소수, 한두 명, 이렇게 생각하지 이렇게 대대적인 부정이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겠나. 상식선에서 가설도 세울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거지…. 사장은 물론이고 감사위원장까지 한통속이 됐는데….”

―청탁과 추천의 차이가 뭔가. 그들은 추천했다고 주장할 것 같은데….

“내 생각에 우리는 혈연, 학연, 지연 등이 너무 강해서 제대로 된 추천 문화가 자리 잡기 어렵다. 추천이란 장단점을 다 객관적으로 써주는 것이다. 그런데 좋은 점과 함께 ‘하지만 성격이 불같이 급하다’라고 쓰면 누가 좋아하겠나. 서로 원수가 되지. 우리나라 추천서에는 전부 좋은 말만 있다. 그래서 말은 추천이라고 하지만 추천이 아니라 다 청탁이다. 전화로 하는 건 더 말할 것도 없고….”

―어느 정도 알려지긴 했지만 당시 채용이 얼마나 엉망이었나.

“외부기관에 5000만 원을 주고 필기시험(인성·적성검사)을 의뢰해 치렀다. 그런데 당시 최 사장이 자기가 부탁받은 사람들이 필기시험을 통과하지 못하자 이를 참고자료로만 쓰라고 지시했다. 당락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한두 명 끼워 넣는 정도도 아니고 아예 전형 과정 자체를 바꾼 거지…. 자기소개서를 보면 아주 가관이다. 창피해서 말을 못한다.” (내용이 부실하던가?) “두 줄짜리 자소서 본 적 있나? ‘무슨 일이든 잘할 수 있다’는….” (그런 자소서도 있나?)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나?” (자기는 채용시험과 관계없이 이미 합격한다는 걸 알았다는 것 아닌가. 백지로는 낼 수 없으니 몇 줄 적은 거고.) “그렇지. 강원랜드가 아니라 다른 회사 이름을 적은 자소서도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복사해 붙인 것이겠지….” (당시 인사팀이 다 봤을 것 아닌가?) “봤지만 탈락시킬 수 없었거나 아예 처음부터 볼 필요도 없이 결정돼 있었거나…. 다 그랬다는 건 아니고 일부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도대체 무슨 논리로 채용 취소 소송을 내겠다고 하는 건가.

“아직 소송을 냈다고 우리한테 연락 온 것은 없는데… 자신들은 몰랐다는 거다. 아버지가 ‘빽’을 쓸 사람도 아니라면서…. 3월에 채용을 취소하고 한 보름 정도 시끄러웠다. 회사 앞에 부모들이 몰려와서…. 초반에는 퇴근도 못 하고 사무실에서 거의 자정까지 갇혀 있었다.” (대부분 자식들이 서른이 넘었을 텐데 부모들이 항의하러 온 건가?) “자식 문제니까…, 안타까웠겠지….”

―솔직히 2013년에만 그런 일이 벌어졌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이전 이후의 채용 과정에 대해서는 왜 조사하지 않나.

“증거가 없으니까…. 2013년 건은 청탁 리스트가 있었고…. 추정이지만 당시에는 청탁자가 워낙 많아서 인사담당자가 살기 위해 기록을 해 둔 것 같다. 기록을 해두지 않으면 기억도 안 나고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들킬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 거겠지. 상식적으로 한두 명이었다면 리스트까지 만들지는 않았을 거다.”

―2013년 채용비리 피해자를 위한 구제 특별채용이 진행 중이다. 몇 명이나 뽑나.

“최대 225명이다. 이번에 채용 취소된 그 인원만큼인데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더 적을 수도 있다.” (당시 지원자가 5268명인데 너무 적은 것 아닌가?) “5268명 중 부정행위 연루가 확인된 사람, 인성·적성 점수 미달자 등을 제외하고 3198명에게 응시 기회를 부여했다. 그런데 5년이나 지나다 보니 이미 취업한 사람도 있고 해서 응시한 사람이 285명에 그쳤다. 27일 또는 28일경 최종 합격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직접 면접을 보나?) “안 본다. 사장이 들어가면 면접장 분위기가 달라질 수도 있고, 또 다른 면접위원들이 눈치를 볼 수도 있고…. 그 대신 간부들에게 분명히 말했다. 한 명이라도 청탁받거나 당신들이 아는 사람에게 뭘 해준 게 드러나면 내가 옷 벗는 것 당연한데 그 전에 당신들부터 먼저 꼭 벗기겠다고….” (그 난리를 쳤는데 또 청탁할 사람이 있을까?) “알 수 없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이중 삼중으로 그물망을 쳤다. 전에는 면접위원을 내부 간부들이 했는데 이번에는 반은 외부 인사로 하고, 위촉도 외부 대행기관에 의뢰했다. 또 회사 감사팀이 면접에 입회하도록 했다. 그랬는데도 또 청탁이 벌어지고 문제가 생긴다? 그러면 집에 가야지.”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집에 못 갈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날아올 것 같은데?) “그럴 것 같기도 하다. 하하하. 아무튼 아직까지는 청탁받은 게 없다.”

―이번 합격자들에게 경력 인정이나 호봉 인상 등 잃어버린 5년에 대한 보상이 있나.

“전에는 2년 후 정규직 전환이었는데 이번에는 인턴 6개월 후 전환(8급)하기로 했다. 안타깝긴 한데 아무리 찾아봐도 법적으로 보상을 해줄 방법이 없더라.” (당시에는 실력이 좋았는데 시간이 너무 지나 처져서 떨어지는 사람도 있지 않겠나?) “그럴 수 있는데…, 어떻게 과거를 돌릴 수도 없고…. 안타까울 뿐이다. 당시 피해자 중에는 자살한 사람도 있다. 얼마나 억울하겠나. 채용 청탁은 진짜 해서는 안 된다. 남의 인생을 훔치는 일 아닌가.”

―최고경영자(CEO)로서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강원랜드가 카지노 이미지가 너무 강한데, 앞으로는 복합 리조트 단지로서 국민의 진정한 쉼터가 되도록 만들고 싶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340만 명이던 비(非)카지노 부문 이용객을 2025년까지 530만 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의 신뢰와 사랑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지난해 5등급이던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도 임기가 끝나는 2020년까지 2등급으로 올릴 계획이다. 조직 혁신도 진행했는데 12명이던 임원을 5명으로 줄였다. 대부분 외부에서 온 사람들인데 불필요한 의사 결정 단계가 많았다. 올해가 설립 20주년인 만큼 조만간 신규 BI(Brand identity)와 함께 중장기 경영 전략도 발표할 예정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강원랜드#채용비리#문태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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