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병로]통일에는 상당한 시간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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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북한연구학회장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북한연구학회장
‘세기의 담판’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의 싱가포르 회동은 여러 면에서 역사적 회담으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쟁 직전에 있던 북-미 양국이 65년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관계 수립을 천명한 것만으로도 역사적 사건이다. 과거에도 북-미 공동코뮈니케(2000년 10월)나 9·19공동선언(2005년)처럼 양국 간 평화협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정상 간의 합의로 이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이번 싱가포르 회담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했던 비핵화 문제가 4·27 판문점 선언에서 언급한 ‘완전한 비핵화’를 반복하는 선에서 멈춘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비핵화 의제가 후순위로 밀린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판문점 선언에서도 그랬듯이 비핵화를 선두에 두려 했던 구상은 북한의 논리와 요구로 뒤로 밀려났다.

회담 시작부터 김정은을 대하는 트럼프의 태도가 매우 공손했다. 비핵화 약속이 없으면 회담장을 박차고 나와 버리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1분만 만나면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던 트럼프가 이처럼 예의 바른 협상가로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김정은에게서 정말 비핵화의 진정성을 발견한 것일까, 아니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겁을 먹은 것일까.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7일 한국을 방문하기 전까지 북한은 물론이고 한국에 대해서조차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한반도가 과거 중국 영토의 일부였다는 시진핑 주석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그러던 그가 한국을 방문하고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한반도 상황과 평화통일의 필요성을 들은 후 생각이 달라졌다. 대표단과 가족을 파견하며 평창 올림픽을 돕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작금의 변화는 평창 올림픽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북한의 참가는 흥행을 일으킨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북한의 선택으로 남북 회담의 기회가 생겨났고 북-미 회담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 트럼프의 생각이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는 김정은의 일련의 행보를 단순한 정치적 쇼로 보지 않고 자국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취한 진지한 행동이라고 판단한다.

평창 겨울올림픽으로 시작된 한반도 평화혁명은 비핵평화 프로세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통일 논의로 이어질 것이다. 비핵평화의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지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빠르면 2년, 길게는 20년도 넘게 지속되는 과정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가 확고하다 하더라도 60여 년 동안 전시체제와 선군체제로 굳어진 북한이 그 껍질을 벗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 한반도의 지속적이며 안정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포함한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 관계 정상화의 일정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북한이 약속한 미사일 엔진실험장 폐쇄를 시작으로 신뢰할 만한 조치들과 함께 이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조치들이 훗날 베트남과 쿠바처럼 적대관계를 완전히 청산하고 친선 국가로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분단 70년 만에 한반도에 찾아온 평화가 통일의 길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북한연구학회장
#북미 정상회담#통일#비핵평화 프로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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