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우리 동네엔 왜 일자리가 없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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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뉴욕 특파원
박용 뉴욕 특파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의 ‘일자리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요즘 미국. ‘경제금융의 수도’라는 뉴욕 내에서 가장 잘나가는 지역이 브루클린이다. 한때 이스트강 건너 맨해튼으로 진출을 꿈꾸는 도시 빈민과 이민자들이 모여 살던 브루클린이 고학력자들이 맨해튼 다음으로 가장 많이 몰려드는 ‘핫(hot)한 동네’가 됐다.

인구 260만 명의 브루클린엔 1975년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많은 6만1300개의 사업체가 생겼다. 2009년 대비 32% 증가한 규모다. 민간 일자리도 같은 기간 39% 늘었다. 미국 전체를 통틀어서도 최상위권 성적표다. 2010년 9.9%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은 올해 4월 4.2%로 떨어졌다. 역시 1990년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낮다.

일자리는 소득 증가로 이어졌다. 뉴욕시 5개 자치구 중 브루클린의 가계 소득 증가율(31%)은 퀸스(17%) 브롱크스(15%) 스태튼아일랜드(9%)를 압도하고, 맨해튼(22%)보다도 높다.

가난과 범죄의 도시가 이렇게 달라진 건 장기 투자를 통해 학교, 주거 여건, 기술기업 등 ‘일자리 스타’ 도시의 삼박자를 충실히 갖췄기 때문이다. 관광지로 유명한 덤보, 재개발이 진행 중인 브루클린 해군 조선소, 미국 최대의 도심 산학 클러스터인 ‘메트로테크’가 있는 다운타운으로 이어지는 ‘브루클린 기술 삼각주’는 뉴욕 스타트업 생태계인 ‘실리콘앨리’의 한 축을 맡고 있다. 뉴욕시티텍, 뉴욕대 공대 등이 우수한 인재를 공급한다.

브루클린 기술기업 일자리는 2009년 대비 57% 증가했다. 전자상거래 기업 엣시(Etsy),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등 1350개의 혁신기업이 둥지를 틀었다. 이 회사들의 평균 임금은 9만2900달러(약 1억209만 원). 에릭 애덤스 브루클린자치구 회장은 “우리는 뉴욕을 넘어, 미국을 이끄는 경제 엔진”이라고 큰소리를 친다.

미국엔 이런 ‘일자리 스타’ 도시가 꽤 있다. 미시시피강 항구 도시인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지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최근 15년간 116% 증가했다. 인구는 18%, 일자리는 15% 늘었다. 세계화와 자동화의 변화에 맞춰 장기적으로 지역 경제를 다변화한 결과였다. 잘나가는 미국 경제 성적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홀로 만든 게 아니다. 브루클린과 배턴루지 등과 같은 지역 도시와 주민들의 합작품이다.

한국의 외환위기 수준 고용 한파 책임을 문재인 대통령과 중앙정부에만 물을 순 없다. 일자리는 브루클린처럼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후보들에게 ‘우리 동네엔 왜 좋은 일자리가 없는지’ 더 독하게 따졌어야 했다.

대학 진학과 졸업 전후로 지방 대도시에서 수도권으로 청년 인구의 대규모 이동이 벌어진다. 좋은 학교와 직장을 찾아 떠나는 ‘청년 두뇌 유출’이 반복되면서 지역 경제는 1970, 80년대 브루클린처럼 쇠퇴하고 있다. 지방정부는 우수한 이공계 학교와 기술 스타트업 생태계를 키우고 살기 좋은 주거 환경을 만들어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할 책임이 있다. 지역 사정을 모르는 중앙정부 주도의 ‘톱다운’식 일자리 대책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노동부 홈페이지에서 50개 주 주요 도시의 취업자, 실업자, 실업률, 비농업 분야별 일자리 추이를 월별로 보여준다. 다음 지방선거는 이런 일자리 성적표로 심판하는 ‘일자리 선거’가 돼야 한다. 일자리 현황판은 청와대보다 새로 취임한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집무실에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일자리#브루클린#고용 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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