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법원장 “檢수사 협조”… 司法 치욕 딛고 신뢰 회복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6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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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은 어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해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에서 사법부라고 예외일 수 없다”며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할 뜻을 밝혔다. 특별조사단이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지 20일 만이다. 조사결과 발표 후 ‘재판 거래’ 의혹이 제기돼 사법부는 극심한 내홍을 겪은 바 있다. 사법부 수장으로서 내부 안정을 위해 ‘수사 협조’ 선에서 절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어제 발표한 담화문에서 “수사가 진행될 경우 미공개 문건을 포함해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모든 인적·물적 조사 자료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혀 사실상 수사 촉구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특정 법관 사찰과 재판 거래 의혹을 적당히 봉합해선 안 된다’는 젊은 법관들의 의견을 상당 부분 수용한 것이다. 대법원이 관련 현직 법관 13명을 징계위에 넘긴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김 대법원장의 조치에 “높이 평가한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날 대법관들은 ‘재판 거래 자체가 있을 수 없다’는 입장문을 발표해 반발했다.

검찰은 단순 비리가 아니라 ‘사법부 독립’ 훼손과 관련해 법관들을 소환하고 압수수색하는 사상 초유의 수사를 하게 됐다. 일단 수사에 착수하면 범죄 혐의를 밝혀내야 하는데 재판 거래 의혹을 낳은 문건의 작성 경위 및 결재 라인, 실행 여부의 진상을 가려내는 데도 난관이 적지 않을 것이다. 현직 대법관들이 ‘재판 거래’ 의혹에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데다 조사단은 관련 법관들에게 직권남용죄 적용이 힘들다는 뜻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사법부가 수사 대상에 오른 것 자체가 치욕적이나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립과 관련해 특정 사건의 판결을 청와대와의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 했다는 의혹 등을 덮고 갈 순 없다. 김 대법원장이 지명한 법원행정처장이 단장을 맡은 특별조사단에서 보다 철저하게 조사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 검찰 수사로도 의혹이 정리되지 못하면 특검 도입이나 국회 국정조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사법부의 협조와 검찰의 깔끔한 수사로 매듭짓는 것이 최선이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신뢰 회복이라는 더 무거운 과제를 짊어지게 됐다. 지난달 31일 1차 담화에서 밝힌 바와 같이 법원행정처 외부 이전이나 비(非)법관 행정전문가 배치 등의 조치를 뛰어넘는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사법부 자체 해결을 촉구한 고위 법관과 젊은 법관들의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지도 고심해야 할 과제다. 사법부가 흔들리면 국민이 승복하는 공정한 재판도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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