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섭의 패션 談談]<3>노출, 부끄러움서 당당함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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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패션은 인체 위에 표현되는 예술이다. 인체를 얼마나 가리는가 또는 얼마나 노출하는가에 따라서 입는 이의 신분과 직업 그리고 사고방식까지도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패션 분야에서 노출은 인체보호설과 인체장식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인체보호설은 기후와 환경에 따라 추위나 더위, 따가운 햇볕과 바람 등 풍우한서에서 인체를 보호하고자 의복을 착용하기 시작했다는 이론이다. 인간의 생리적인 욕구로서 노출된 신체를 외부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초기에는 동물의 가죽이나 식물의 잎 등으로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반면 인체장식설은 인간의 장식적인 욕구에 기반을 뒀다. 풍우한서에 아랑곳하지 않고 노출을 하거나 반대로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새의 깃털이나 조개껍데기 등을 더하여 장식을 한 것이 패션에서 유행의 시초가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중 고대 그리스인들은 노출을 자연시하고 경배했다. 아름다운 육체가 곧 아름다운 정신이라는 사상이다. 의복은 미의 상징인 신체를 속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한쪽 어깨를 드러내거나, 단순하지만 우아한 주름장식을 통해 신체의 실루엣을 그대로 드러냈다. 밀로의 비너스상을 보면 노출이 곧 패션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중세로 접어들면서 기독교의 엄격한 금욕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의복은 신체의 거의 모든 부분을 감싸고 노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거룩하고 높은 신의 이념을 표현하고자 길고 수직적인 형태가 유행했다. 쉽게 옷을 벗을 수 없도록 단추를 일렬로 수십 개 달기도 했다.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남성과 여성의 성적 매력이 의복을 통해 표현되었다. 남성은 은밀한 부위를 강조하는 하의를 입었고 여성은 허리를 조이고 히프를 강조하는 스타일이 만들어졌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의 치마는 무릎까지 짧아지고 종아리가 노출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서양 문물을 접한 ‘신여성’들이 이런 패션을 선보였다. 동서양 모두 하녀들조차 일을 할 때 불편한 긴 치마를 입어야 했던 시대였으니 그 파장은 사회 전반에 두루두루 영향을 미쳤다.

이후 노출의 역사는 미디어와 함께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영화 ‘이브의 모든 것’에서 배우 벳 데이비스가 입었던 어깨를 다 드러낸 블랙드레스는 어깨 치수를 잘못 계측해서 어깨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헐렁한 드레스였으나 오히려 시대를 풍미한 오프숄더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 ‘7년 만의 외출’에서 메릴린 먼로가 지하철 송풍구 위에서 각선미를 드러내는 명장면은 당시에는 검열로 극장에서 볼 수 없었음에도 미국 전역에 흰색 직물이 동나게 만들었다. 비키니섬에서 행해졌던 핵실험만큼 커다란 폭발력을 지닌 비키니 수영복은 노출의 역사에 정점을 찍었다.

지금은 노출이 여성들의 자신감으로 표현된다. ‘원초적 본능’에서 미니드레스를 입고 다리를 꼰 채 신문하는 형사들을 좌지우지하던 샤론 스톤은 ‘노출 스타는 곧 백치미 스타’라는 공식을 완전히 뒤집었다. 국내에서도 배우 김혜수는 과감한 노출의 드레스로 늘 레드카펫에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역사를 통해, 그리고 미디어를 통해 전파된 노출은 패션의 역사에 늘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인체보호설#인체장식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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