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오코노기 마사오]비핵화 이후 북한의 전략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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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식 무기는 오히려 강화 속
남측과의 교류 확대하며 경제 건설에 총력 집중할 듯
日과는 과거청산·경제협력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중지 발표는 전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그러나 2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앞으로 보낸 이 서한은 형식에 있어 극히 정중했고 내용도 억제돼 있었다. 남대문시장에서의 고객과 점주의 흥정에 비유한다면 “그런 비싼 물건은 필요 없다”고 냉정하게 대응한 트럼프 대통령의 ‘판정승’이라 할까.

그러나 각도를 달리해서 보면 이 흥정, 혹은 ‘밀당’이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으로 이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계기로 북-미 간에 첫 실질적인 비핵화 교섭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회담 중지를 선언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정신을 차리게 했고 정상회담에 소극적이던 미국 내 보수파들의 지지를 회복했다. 중국을 견제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그뿐 아니다. 단순히 회담을 중지하는 것이라면 백악관 성명만으로도 충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식 서한을 썼기 때문에 김 위원장도 정식으로 답장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뉴욕에 도착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김 위원장의 서한을 전달한다면 두 정상 사이에 최초로 개인적인 의사소통이 이뤄지게 된다. 이 또한 교묘한 외교였다.

회담 중지와 관련한 북-미 간 논쟁이 그대로 비핵화 교섭의 일부였음에도 주목해야 한다. 북한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담화를 통해 리비아 방식을 명확하게 거절하고 ‘체제 보장’의 중요성을 호소했다. 미국 측은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등에 대해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완전한 비핵화(CVID)’가 불가결하다고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리비아 방식을 배제하고 트럼프 방식에 의한 ‘체제 보장’을 약속했다. 그 결과 성 김 전 주한 미국대사(현 주필리핀 대사) 등이 판문점에서 북한 측과 실무협의에 들어간 것이다.

물론 실무협의도 쉽지는 않다. 미국 측은 장거리 미사일과 핵탄두 조기 해외 반출, 신고와 검증 방법 등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비핵화를 요구했을 것이다. 또 그것들이 없으면 북-미 정상회담을 열지 않겠다고 협박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북한 측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정상회담이 열리더라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이 결렬돼 미국이 군사력을 행사한다면 “믿을 수 없는 규모의 비극”(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발생한다. 여기 더해 한미동맹은 붕괴하고 경제위기가 동아시아를 덮칠 것이다. 중국의 영향력은 커지고 일본도 자주방위노선을 걷게 될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그 같은 사태의 심각성이 북-미 교섭의 타결을 촉구하고 있다.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 보장이란 무엇일까. 비핵화를 받아들인 북한은 어떤 전략으로 장기에 걸쳐 살아남으려 할 것인가. 그 생존전략을 이해하지 않고 비핵화 교섭을 논의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정책에서 그 윤곽을 추리해 보면 첫째, 핵무기를 포기한 북한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천의 장거리포, 미군과 한국군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단거리 미사일, 그리고 한국 내 주요 거점을 기습할 수 있는 특수부대를 유지할 것이다. 둘째, 남북미 및 남북중이 우선 종전선언을 하고 그 뒤 남북이 미중이나 미중일러를 연결하는 다각균형의 국제 시스템을 추구하려 할 것이다. 미국은 이미 북한의 적국이 아니라고 설명할 것이다.

셋째,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남북의 공존과 협력이 불가결하다. 판문점 선언에 적힌 ‘(남북관계의) 전면적이고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이나 ‘민족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북한은 북-미 비핵화 합의 후 한국의 독자 경제 제재(5·24조치)를 해제하고 경제 교류를 확대하려 할 것이다. 넷째, 북한은 중국식 개혁개방 정책을 도입하고 수출 지향형 경제 발전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4월 2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는 정식으로 ‘병진노선’을 포기하고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한다고 결의했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가 불가결하다. 식민지배를 청산함으로써 그에 따른 경제 협력을 획득해 국내 산업 기반을 정비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체제 보장이란 새로운 생존전략에 의한 점진적인 체제 이행을 위한 조건 정비인 듯하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비핵화#트럼프#북미 정상회담#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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