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김기용]딱 10km만 속도를 낮추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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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용 한국교통안전공단 책임연구원
김기용 한국교통안전공단 책임연구원
반세기 동안 한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뤘다. 그 덕분에 교통 수단과 도로시설도 크게 늘었다. 인프라 성장은 교통문화에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 안전보다 소통과 효율성이 강조됐다. 정체시간을 줄이는 게 교통정책의 목표였다. 이를 위해 도로는 갈수록 넓어지고 제한속도는 시속 60km 이상으로 설정됐다. 자동차 중심의 정책은 보행자 안전을 위협했다. 넓은 도로에선 보행자 이동거리가 늘어나 사고 위험이 높다. 자동차 속도가 빠를수록 충돌 때 보행자의 피해는 클 수밖에 없다. 최근 5년간 차량 간 사고 치사율은 1.2명이지만 차량과 사람 간 사고는 치사율이 3.7명으로 급증했다. 외국은 어떨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인구 10만 명당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는 평균 1.1명(2015년 기준). 한국은 3배가 넘는 3.5명이다.

보행자 사망 감소를 위한 시작은 자동차의 속도 관리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시속 60km로 달리는 자동차가 보행자와 부딪힐 때 중상 가능성은 92.6%다. 보행자 머리 상해지수는 4000을 넘어갔다. 의학적으로 머리 부위의 상해지수가 4000이 넘으면 사망 확률은 80% 이상이다. 하지만 시속 50km로 속도를 줄이자 중상 가능성은 72.7%로 20%포인트가량 줄었다. 시속 30km에서는 중상 가능성이 15%를 넘지 않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을 중심으로 ‘5030정책’을 추진 중이다. 도시 지역 속도를 시속 50km 이하로, 보행자가 많은 주거·상업지역은 시속 30km 이하로 제한하는 것이다.

정책이 성공하려면 사회 전체의 지원과 참여가 필요하다. 교통은 빠른 흐름이 아니라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제한속도를 낮추면 교통지체가 심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제한속도를 낮춰도 평균 통행속도나 통행시간 측면에서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게 여러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제한속도 하향이 완전한 효과를 얻으려면 도로와 교통시설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 도로 폭을 줄이거나 횡단보도 형태를 바꿔 자연스럽게 자동차 속도를 줄이는 것이다.

이제 도로 위 소통과 시간 단축에만 무게를 둬서는 안 된다. 모두의 안전을 위한 교통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그 시작은 바로 자동차 속도 하향이다.
 
김기용 한국교통안전공단 책임연구원
#교통문화#한국교통안전공단#자동차 속도 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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