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반도체 환경보고서에 핵심 기술 6개”… 공개는 自害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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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술보호위원회 산하 반도체전문위원회가 어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의 작업환경보고서에 반도체 분야 국가 핵심 기술 7개 중 6개가 포함됐다고 결론지었다. 또 국민권익위원회 중앙행정심판위원회도 작업환경보고서 공개를 보류해 달라는 삼성전자 측 요청을 받아들였다. 행정심판위가 정보공개 여부를 판단할 때까지 보고서 공개는 미뤄진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9일과 20일, 각각 삼성전자 구미·온양공장과 기흥·화성·평택공장의 작업환경보고서를 30일 유예기간이 끝난 뒤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영업비밀로 볼 만한 정보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반도체전문위는 “2009년 이후 작성된 작업환경보고서는 30나노 이하급 D램 조립·검사기술, 낸드플래시 설계·공정·소자기술 및 3차원 적층형성기술 등 6개의 국가 핵심 기술을 포함하고 있다”고 판정했다. 당연한 판정이다. 작업환경보고서에는 500여 개 공정의 장비 종류와 배치 등이 상세히 기술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997억 달러를 수출해 전체 수출의 17.4%를 차지한 반도체는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자, 그렇지 않아도 경쟁력을 잃어가는 우리 산업의 생명줄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 점유율 1, 2위를 차지하는 기반은 독보적인 기술력에 있다. 외국 경쟁업체들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 반도체 기술을 빼가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터에 보고서를 공개하라는 것은 경제 국익을 자해(自害)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당초 고용부가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근로자 유족에게 보고서 전부를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은 당해 공장 작업환경보고서를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에 따른 절차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공정과 작업 내용이 판이하게 다른 구미·기흥·화성·평택공장의 작업보고서까지, 그것도 이해관계자가 아닌 제3자에게까지 전부 공개하기로 행정지침을 바꾼 것은 정부의 권한 남용이라고밖에는 해석하기 어렵다.

삼성전자는 전문위의 판단을 법원과 행정심판위에 참고자료로 제출할 계획이다. 민관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위의 판단은 그 자체로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당장 고용부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용부가 한국의 정부 부처라면 국가 핵심 산업 기술을 보호하면서 근로자의 건강권을 챙길 수 있는 방안을 고심했어야 옳다. 전문가의 자문, 관련 부처와의 조율도 없이 덜컥 핵심 기술이 담긴 보고서 공개부터 결정한 고용부의 행태는 정부가 나서서 외국 기업의 산업 스파이 노릇을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작업환경보고서#고용노동부#온양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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