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 “오늘도 집에 들어가면, 당신 오셨수 할 것 같은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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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먼저 떠내보낸 방송인 송해 씨


최근 부인상을 당한 송해 씨는 지난달 31일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으려 했지만 부인에 대한 미안함에 먼저 떠난 아들 얘기가 겹치자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는 “그냥 밝게 살려고 한다” 고 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최근 부인상을 당한 송해 씨는 지난달 31일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으려 했지만 부인에 대한 미안함에 먼저 떠난 아들 얘기가 겹치자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는 “그냥 밝게 살려고 한다” 고 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집에 늦게 들어가면 마누라가 ‘이제 오셨수’ 하는 것 같은 생각도 문득 들고요. 사진 보며 이야기도 합니다. 사진도 다 그대로 두고 있으니까요.”

원로 방송인 송해(본명 송복희·91) 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난달 31일 오후, 얼마 전 아내 석옥이 씨(83)를 먼저 떠나보낸 송 씨의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인근 사무실을 찾았다. ‘원로 연예인 상록회’라는 문패가 달린 문을 열고 들어가자 15평 남짓한 내부는 은퇴한 연예인 등으로 북적였다. “에이 뭘 여기까지…” 하며 반갑게 맞아준 그는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아래층 식당으로 기자의 손을 이끌었다. 따뜻했다.

―상을 치른 지 얼마 안 됐는데 불쑥 찾아와서…. 잘 모셨는지요?

“사람이 당하고 접해 봐야 아는 건데, 난 살다가 한쪽이 먼저 가고 하는 걸 많이 봐 왔어요. 부부가 만났다가 꼭 같이 갈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바깥양반이 먼저 가야 해. 아내가 먼저 가면 그 다음 날부터 초라해지는 거 같아요. 집사람이 대구가 고향이에요. 장인도 그쪽에 모셨고. 그래서 그쪽으로…. 날씨도 아주 봄날 같았어. 다 치르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대전쯤 오니까 눈이 날리고, 아주 춥고 그렇더라고.”

―집에 가면 적적하실 것 같습니다.

“딸들도 다 이웃에 살고요. 와서 위로해주고 그래요. 또 오늘 점심 때 월례회를 했는데 사람들이 모여서 위로해주고. 평소보다 많은 30명이 나왔어요. 사람이 힘이지 뭐. 한 멤버가 ‘슬픈 일 당한 분도 있으니 점심을 내겠다’고 해서 잘 얻어먹고 왔어요. ‘파이팅’도 하고….(웃음)”

―생전에 행복하게 해주셨나요? 장례 치를 때 ‘여보 미안해’ 하시던 모습이….

“우스갯소리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송해 마누라다 하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나이 들었는데 집 안에만 있어서 밥 다 챙겨주고 해야 할 필요 없잖아? 매일 돌아다니니. 돈도 벌어다 주고…. 그런데 우리 계통 사람들이 지방 출장이 많아요. 같이 뭘 할 여유 없이 살았죠. 잘해준 건 생각 안 나지. 못해 준 것만 생각나지. 우리 계통은 안사람들이라는 게 기다림에 지쳐요. ‘같이 여행 가자’ 이런 말 못한 게 아픔이에요.”

―집에서는 좀 많이 안아 주셨나요?

“집에 가면 우리 희극 하는 사람들은 말이 없어요. 홀쭉이와 뚱뚱이, 구봉서, 배삼룡 등도 집에 가면 말이 없었어요. 나 같은 경우도 말을 안 했어. 그러니 마누라도 조용하지. 술 때문에 많이 미안하지. 세상에 다 알려진 거지만, 내가 봐도 술이 좀 과했어요. 내가 먹은 걸 호수에 넣는다면 얼마나 될까 생각도 들어요. 희극 하는 사람들이 술을 가까이하는 이유가 있어요. 오민석 단국대 교수가 ‘나는 딴따라다’라는 책을 써줬는데, 사실 (연예인) 경시 풍조가 좀 강했잖아요. 우리가 식당이나 술집 같은 데서 한잔씩 하다가 시끄럽게 되면 ‘아, 딴따라들이구나’ 하는 주변인들의 시선 같은 게 있었어요. 요즘은 안 그렇지만….”

‘전국노래자랑’의 다른 이름은 송해다. 2003년 평양에서 열린 노래자랑을 진행하는 모습. “전국노래자랑은 내 건강의 동반자입니다. 나는 진행할 때 앉지도 않아요. 또 인생의 교과서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잖아요. 배운 게 너무 많아요.” 동아일보DB
‘전국노래자랑’의 다른 이름은 송해다. 2003년 평양에서 열린 노래자랑을 진행하는 모습. “전국노래자랑은 내 건강의 동반자입니다. 나는 진행할 때 앉지도 않아요. 또 인생의 교과서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잖아요. 배운 게 너무 많아요.” 동아일보DB

―2015년 TV 프로그램 ‘나를 돌아봐’에서 63년 만의 결혼식으로 화제가 됐었죠? 그 전에도 스타였는데, 면사포 씌워줄 기회가 있었을 것도 한데요?

“잔치는 사람이 많아야 좋잖아요. 그런데 나는 (1951년 1·4 후퇴 때) 혼자 넘어와서 친척이 없으니 오히려 쓸쓸할 것 같아. 그래서 안 한 것도 있지. 우리 세대가 불행한 세대예요. 정변을 다 겪었잖아. 북에 계신 부모님께 죄가 되는 것 같기도 했고요. 물론 난 해주고 싶었지요. 그리고 제가 3남매를 뒀는데, 아들놈을 일찍 잃었잖아. 결혼식 한다고 하면 마누라가 아들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그냥 덮자 한 거지. 미안하게 된 거지요.”

―이번에 아들 생각이 더 났을 것 같습니다.(그는 외아들을 1974년 오토바이 사고로 잃었다.)

“나하고 마누라랑 애기(아들)하고 같이 찍은 사진이 있어요. 이번에 장례식 하면서 아내한테 넣어줄까 하고 가져갔다가 다시 가져왔어요. 보고 싶을 때 혼자 꺼내 보려고…. 잊는다고 지워지는 건 아니에요. 가슴에 묻는다고 하잖아. 저는 차례도 못 지내다가 이젠 살아계신다고 할 수 없으니 십수 년 전부터 차례를 모시고 있어요. 그때 아들 밥그릇하고 잔도 놓아줍니다.”

―생계가 어려운 은퇴 연예인들이 돌아가시면 장례를 치러주기도 하신다고요?

“사무실 갖고 있으면 정말 어려운 사람들 많이 와요. 회원뿐 아니라 먹고살기 힘든 연예인 초상나면 그냥 해주다시피 했어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 같아요. 어쩌다 보면 살다가 어려워지니까. 시신 하나 손댈 사람도 없을 때 우리가 한 경우가 많아요. 묘 관리도 해줬죠.”

그는 발인 다음 날인 지난달 23일 강원 태백에서, 지난달 30일에는 광주에서 전국노래자랑 녹화를 찍었다.

―언제까지 방송하실 생각이세요.

“나는 아직 그럴때(그만 둘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시름시름해도 방송하면 쌩쌩해집니다. 책임감인 것 같아요. 우리는 정년이 없는 거고 갈 때까지 가자, 그래서 ‘난 여러분의 평생친구다’라고 하는 것이죠. 요즘 건강프로그램 많잖아. 거기 양의사, 한의사들이 다 있는데, 싱거운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 사람들이 나한테 와서 입 벌리면서 ‘아 해보세요’라고 하기도 해요. 그러고서는 ‘아이고 선생님 120년, 150년은 사실 거예요’라고 해서 그러려니 합니다. 매사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술은 좀 줄이시는 게….

“그거까지 줄여가며 심심할 필요가 있나요? (웃음) 양적으로는 아무래도 줄더라고요. 또 언짢은 분이 없나 하고 나 자신이 자꾸 주변을 살피게 됩니다. 조만간 2만 원짜리 닭도리탕(닭볶음탕)에 소주 한 잔 합시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방송인 송해#전국노래자랑#나를 돌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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