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동정민]파리에서 만난 문정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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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문정인 대통령외교안보특보의 현실 진단은 냉철했다. 뜬구름 같은 이상론에 집착해 남북 대화를 주도한다는 보수 진영의 시각과는 달랐다. 파리정치대학 강연과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평창 올림픽 이후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미국의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림픽이 끝나는 4월이면 연기됐던 한미 연합훈련이 재개돼 5월까지 이어진다. 8월 을지포커스 훈련도 있다. 북한은 반발할 것이고 한반도 긴장은 급속도로 높아질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남북대화를 용인했지만 그의 참모와 워싱턴 정계 분위기는 김정은과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에 매우 부정적”이라며 “남북대화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워싱턴을 설득하는 게 문재인 정부의 과제”라고도 했다. 문 특보 강연 하루 뒤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됐던 빅터 차의 낙마 소식이 전해졌다. 그의 말처럼 워싱턴의 강경한 기류가 심상치 않다.

치밀하고 객관적인 분석을 듣다 보니 그의 해법이 궁금했다. 그는 ‘올림픽 기간 한미 훈련 중단’을 처음 공개적으로 제안해 관철시킨 당사자다. 사실상 문 정부는 ‘평창’이라는 모멘텀을 살리려 남북관계의 미래를 다 걸었다. 대북 저자세에 대한 남한의 불편한 여론, 북한에 시간만 벌어준다는 미국의 불신, 남한의 요구를 하나 들어줬으니 떡 하나 달라고 할 북한의 기대감을 감당하고 말이다.


그는 해법으로 북-미 대화를 제시했다. 이번 올림픽 기간 어떻게든 마이클 펜스 미국 부통령과 최룡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급의 대표단이 만나야 한다는 절박함을 내비쳤다. 대통령 직보가 가능한 그의 영향력을 짐작해 보건대 문재인 정부가 북-미 회담을 위해 지금 북한과 미국을 다각도로 설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설득이 될까 하는 부분부터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문 특보는 이 때문에 북한의 마식령스키장에도 한국 선수를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신뢰를 쌓는 작업이라는 설명이다. 이날 강연에서 논란이 됐던 “북한이 평창 올림픽을 체제 선전의 도구로 써도 그냥 두자”는 발언도 이 맥락에서 나왔다.

어느 정도까지 참고 퍼줘야 북한이 대화를 이어갈지도 의문이지만 마음껏 퍼줄 수도 없다. 지금은 북한의 계속된 핵·미사일 도발을 응징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전면적 대북제재 국면이다. 한국이 지나치게 북한의 숨통을 틔워줄 경우 국제사회 공조의 틀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미국을 움직이기도 어렵다. 문 특보는 북한이 진정 원하는 건 경제적 지원도, 체제 보장도 아닌 보통 국가로 인정받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핵 포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미국은 핵문제 조치 없이 올림픽 기간에 북-미 대화가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문 특보는 기자간담회에서 “문 정부가 ‘포스트 평창’의 해법을 찾느라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트 평창’에 대한 대비책도 없이 이처럼 ‘평창’에 ‘다 걸기(올인)’를 한 것인가 실망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올림픽 기간 동안 문 특보의 진심이 통해 북핵 해결의 물꼬를 텄으면 좋겠다. 북한으로부터 “올림픽 이후 핵 동결이나 포기를 논의할 수도 있다”는 말이라도 나온다면 문 특보의 전략은 빛을 발하는 셈이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포스트 평창’에 대한 대책은 철저히 세워야 한다. 그날 강연장에서 문 특보가 밝힌 “문 대통령은 북한을 선의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이런 수준으로는 안 된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문정인 대통령외교안보특보#파리정치대학 강연#을지포커스 훈련#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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