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미루면 게으르다? 아니, 창의적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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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대표적 인터넷 연관 검색어가 ‘procrastinator(일을 지연 시키는 사람)’이다. 동아일보DB
고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대표적 인터넷 연관 검색어가 ‘procrastinator(일을 지연 시키는 사람)’이다. 동아일보DB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전 워싱턴 특파원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전 워싱턴 특파원
“Stop procrastinating(꾸물대지 마).”

직장 상사가 부하에게 일을 시킵니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 부하는 빨리 끝내지 못합니다. 상사는 속이 터집니다. 참다못해 부하에게 소리 지릅니다(영어로). “Stop procrastinating(왜 이리 질질 끄냐, 빨리 끝내지 못해).”

Procrastination(프로크래스티네이션). 일을 질질 끌며 지연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직장 일을 안 하고, 시험공부를 안 하고, 딴짓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뭐 하냐”고 물어보면 “I’m procrastinating”이라고 답합니다.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미루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미루는 직원이 많은 회사는 생산성이 저하됩니다. ‘직장생활의 적 procrastination을 퇴치하라’ ‘procrastinative(일을 미루는) 직원 관리법’ 등의 제목처럼 맡은 임무를 정해진 시간에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경영학 책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최신 경영 트렌드는 ‘procrasti-nation’의 의미를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일을 빨리 끝내지 못하고 지연시키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일까요.

서둘러 일을 끝내는 사람들은 ‘속이 시원하다’는 만족감을 느낍니다. 해치웠다는 기쁨에 더 이상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면 일을 미룬다는 것은 어느 시점에서 일을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일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계속 고민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더 나은 해결책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Procrastination is a vice when it comes to productivity, but it is a virtue for creativity.’ 미국에서 유명한 말입니다. ‘일을 미룬다는 것은 생산성에는 독이 될 수 있지만 창의성에는 미덕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열심히 일을 미뤄 성공한 위인들도 많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은 ‘일 미루기’파의 대가입니다.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하는 데 한없이 느린 ‘거북이’ 면모를 보여줬던 링컨은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문’도 연설 당일 아침에서야 완성했습니다. 전날 연설문 작성을 끝내지 않고 잠자리에 드는 링컨에게 참모가 “빨리 연설문 작성을 끝내면 개운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링컨은 “자면서 생각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만큼 멋진 연설문을 만들고 싶었던 링컨의 마음이 보입니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잡스가 얼마나 일을 잘 미루는지는 인터넷만 검색해 봐도 압니다. 잡스의 연관어로 ‘procrastinator’(일을 지연시키는 사람)가 가장 먼저 뜹니다. 잡스가 일을 미루면서 창의적 제품 개발에 얼마나 힘을 쏟았는지는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일을 미루는 것은 결코 좋은 습관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을 지연시키더라도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빨리빨리’ 증후군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이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전 워싱턴 특파원
#프로크래스티네이션#procrastination#procrasti-nation#일을 질질 끌며 지연시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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