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0>한하운의 인권선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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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곤란하나 가장 본질적인 것은 생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괴로울 때도 사랑한다는 것이다. 생은 모든 것이다. 생은 신(神)이다. 생을 사랑함은 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전쟁과 평화’의 영역본 일부를 한하운 시인이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나환자였던 시인은 이것을 1960년에 펴낸 자작시 해설집 ‘황토길’의 제사(題詞)로 삼고 있는데, 다른 모든 것들은 활자로 되어 있는데 이것만 친필이다. 그만큼 특별하다는 말이다. 시인은 톨스토이의 말을 빌려, 버림받은 사람들의 생명도 사랑의 대상이라며 “문둥이의 인권을 선언”한다.

냉대와 차별이 얼마나 심했으면 “문둥이의 인권 선언”이 다 필요했을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소록도로 내려가야 했을까. ‘소록도로 가는 길에’라는 부제가 붙은 시 ‘전라도길’은 세상에 쫓겨 소록도로 향하는 한센인의 절망을 이렇게 노래한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 뿐이더라./낯선 친구 만나면/우리 문둥이끼리 반갑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세상에서 그들이 서로를 반기는 눈물겨운 장면을 상상해보라. 이 시는 그래서 “자학의 노래”다. 그럼에도 그들은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걸음을 옮긴다. 소록도가 비록 누군가에게는 “낙원”과는 거리가 먼 “인간 동물원”일지 모르지만, 더없이 소중한 생명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이라서 찾아가는 길이다.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시는 그래서 “생명의 노래”이기도 하다.

시인이 “인간 동물원”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했던 소록도를 인간 공동체로 바꾼 사람들이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마리안느와 마가렛도 그러한 사람들이었다. 두 간호사는 이십대에 그곳에 왔다가 할머니가 되어 돌아갈 때까지 거의 반세기를, 가족과 친구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한센인을 돌보며 살았다. 그들에게는 타인의 “생을 사랑하는 것이 신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칠십이 넘어 스스로가 돌봄의 대상이 되자 조용히 섬을 떠났다. 짐이 되기 싫어서였다. 그들이 떠난 후에 사람들에게 배달된 편지에는 “부족한 점이 많은 외국인인 우리에게 큰 사랑과 존경을 보내주어서 대단히 감사”하고, “저희의 부족함으로 인해 마음 아팠다면 이 편지로 미안함과 용서를” 빈다는 말이 쓰여 있었다. 2005년 일이었다. 그들은 떠날 때도 겸손했다. 그래서 더 눈부셨다. “시를 눈물로 쓴다”고 말했던 한하운 시인이 살아서 그 모습을 보았더라면 여전히 눈물로, 그러나 이번에는 서러움의 눈물이 아니라 감동의 눈물로 시를 썼을 것이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소설 전쟁과 평화#소록도#시인 한하운#시를 눈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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