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원지수]‘열린’ SNS에 ‘갇힌’ 아이러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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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지수 런던정경대 사회공공커뮤니케이션 석사과정
원지수 런던정경대 사회공공커뮤니케이션 석사과정
‘소셜미디어는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이에 대해 최소 두 가지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사용하여 논하시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쉴 틈 없이 달려온 석 달간의 첫 학기를 마무리할 기말 과제다. 언제나 그렇듯, 해야 할 일을 코앞에 두고 밤새 책상에 앉아 있자니 으레 딴생각이 뭉게뭉게 몰려왔다. 소셜미디어라… 가만있자, 아까 밥 해 먹고 찍어 올린 사진에 누가 좋아요를 눌렀는지 볼까? 오, 어제 이렇게들 모여서 놀았나 보네, 좋겠다. 어라, 얘 프사(프로필 사진)가 심상치 않은데? 결혼하나?

나는 ‘단톡방’이 싫었다. 적게는 네댓 명부터 많게는 100여 명에 달하는 사람이 있는 그 방에서 특정한 주어 없이 오가는 대화들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줄을 몰랐다. “나 이거 살 건데 괜찮은지 의견 좀!” “지금 저 좀 도와주실 수 있는 분ㅠㅠ” “야근 중인 사람 이따 맥주 한잔 콜?”과 같은 질문들은 편리했다. 누군가를 콕 찍어 물어본 것이 아니기에 아무나 대답해도 되었고, 반대로 아무도 대답하지 않아도 되었다. 가끔, 아니 많은 경우 수많은 질문들은 허공에 부서졌다.

“지이수야 노올자∼!” 어릴 적, 동네 친구들은 우리 집 앞에서 내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그것에는 다정한 리듬이 있었다. 학창 시절 주고받던 쪽지엔 네 이름으로 시작해 내 이름으로 끝나는 우리끼리의 이야기가 있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한 번만 내 소식을 올리면 된다. 만일 우리가 서로의 근황을 모른다면 SNS를 열심히 하지 않은 탓이 되었다.

결국 런던에 온 이후 그간 계속 피해 다니던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은 내가 여기서 무얼 먹고 사는지, 어디를 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굳이 내게 묻지 않고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반대로 이곳에 있는 나도 오늘 내 친구가 어떤 커피를 마셨는지, 그 집 아이는 얼마나 컸는지 빠짐없이 모두 알 수 있었다. 편리했다. 그런데, 점점 누군지 모를 이들의 어떨지 모를 반응이 궁금해 실시간으로 휴대전화를 들었다 놨다 하는 나를 발견했다. 방금 찍은 사진을 최대한 있어 보이게 가공해서 올려놓고는 1분도 채 안 되어 누군가 좋아요를 눌러주지 않았을까 궁금해 전화기를 집는다. ‘빨리 아무나 와서 나 잘 먹고 잘 산다고 해주세요!’

직접 다른 이의 문을 두드려 소식을 전하는 대신, 예쁘게 치우고 꾸며 놓은 우리 집 대문 안에 앉아 종일 누가 줄지 모를 관심을 기다리는 꼴이었다. 카톡으로 근황을 물으며 사진 한 장 보내달라는 언니에게 무심코 ‘인스타 보면 되는데’라고 말하려다 깜짝 놀랐다. SNS를 시작한 이후 무언가를, 누군가를 딱히 그리워하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이상하게도 그리움이 왁자지껄 밀려난 자리,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그 자리에 가끔 썰렁한 외로움이 분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개념이 학교에서, 사회에서 호들갑스럽게 다루어지는 사이, 우린 어릴 적 친구를 소리쳐 부르던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적인 의미를 잊었다. 최대한 널리 읽히는 광고 문구를 써야 하는 자로서, 커뮤니케이션을 책상에서 배운 학생으로서, 단톡방을 두려워하는 소심한 인간으로서,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소셜네트워크는 더 넓은 세상과 나를 연결시켜 주는 연결망일까, 손바닥만 한 세상에 나를 가두는 그물망일까.
 
원지수 런던정경대 사회공공커뮤니케이션 석사과정
#인스타그램#열린 sns에 갇힌 아이러니#단톡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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