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의 과학 에세이]곤충의 탈피, 그 처절한 생존전략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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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김재호 과학평론가
집에서 기르던 가재가 며칠 전 탈피를 했다. 처음엔 죽은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껍질을 벗은 후 새롭게 태어났다. 환골탈태다. 아, 경이롭다. 가재는 자신의 몸체만 한 허물을 남겼다. 이 과정에서 가재는 집게발 두 개를 잃었다. 원래 붉은색을 띠던 이 외래종 가재는 이제 푸른색을 띤다. 인고의 시간을 견뎠을 가재가 대견하다. 탈피는 눈에 띄지 않지만 흔하다. 가재 같은 갑각류를 포함해 곤충류, 거미류 같은 절지동물뿐 아니라 뱀, 이구아나 같은 파충류와 개구리, 도롱뇽 같은 양서류도 탈피를 한다. 탈피 후 껍질은 영양소가 많아 다시 먹는 경우가 많다. 고생대 생물인 삼엽충도 탈피를 하며 성장을 했다. 현재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투구게 역시 4번의 탈피를 거쳐 어른이 된다. 사마귀는 평생 7번 탈피를 해 성충이 된다.

인간은 약 500만 개의 털을 갖고 있는데, 매일 평균 50∼100개가 빠진다. 또한 체중의 약 16%를 차지하는 피부가 1년에 10회 이상 새로운 피부로 바뀐다. 피부세포의 수명이 약 35일이기 때문이다. 즉 인간도 탈피를 한다.

그런데 탈피의 과정보단 결과만 자주 보이는 이유는 뭘까? 9월 세계 경제곤충학회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흰개미들은 탈피를 위해 끊임없이 둥지로 돌아가려는 충동을 느낀다고 한다. 플로리다대 연구진은 흰개미들이 둥지에서 은밀히 흔적을 남기며, 탈피 후 둥지 근처에서 36시간 동안 머물렀다고 밝혔다. 아무 데서나 탈피를 하는 게 아니다.

연구진은 흰개미가 서식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흰개미 일꾼들 중 총 60마리를 선별해 탈피를 한 30마리와 안 한 30마리를 추적했다. 그랬더니 탈피를 한 흰개미의 경우 모두 둥지 중앙, 특히 흰개미 알들이 있는 곳에서 5cm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심지어 탈피 억제 살충제를 먹은 흰개미들도 대부분 둥지로 돌아가는 것으로 추정됐다. 알을 손질하고, 애벌레한테 먹이를 주는 흰개미 일꾼들 중 매일 1.7%가 탈피를 한다. 만고의 진리처럼 성장에는 고통이 수반된다. 숨을 쉬지 않거나 먹지 않으며 탈피가 진행된다. 하루살이 유충의 경우 탈피 3, 4시간 전 평소보다 41% 많은 산소를 들이마시며 준비한다. 탈피가 진행되는 45분에서 1시간가량 호흡을 멈춘다. 탈피가 끝나면 다시 약 2시간 동안 산소를 많이 들이마시며 서서히 호흡량을 맞춰 나간다. 일부 나방류는 번데기 상태에서 성충이 되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곤충의 본능이자 패턴이다.

곤충학 연구에 따르면, 탈피는 폐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다. 인간으로 비유하면 말이다. 특히 탈피 직후의 몸은 말랑거리기 때문에 매우 약하고 포식자한테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다 벗지 못해 죽는 탈피사도 일어난다. 갑각과 새로운 부분이 올바르게 분리가 안 돼 장기에 손상을 입기도 한다. 가재의 경우 물속 칼슘 농도가 낮으면 탈피 이후 쉽게 껍질이 딱딱해지지 못하거나, 인간의 뼈가 삭듯 갑각이 썩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번거롭고 힘든 탈피를 하는 걸까? 바로 성장을 위해서다. 곤충은 몸집이 작아 뼈를 가질 수는 없다. 이때 외골격은 곤충을 천적으로부터 보호하며 내부 장기를 지켜준다. 또한 외골격은 수분 증발을 막아 초기 수중 생물이 육상 생활을 가능하게끔 했다. 곤충의 외골격은 탄수화물 30∼50%, 단백질 40∼60%, 이외 지질, 무기이온, 수분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단단하기 때문에 성장하기 힘들다. 따라서 탈피, 즉 묵은 표피층을 벗어버려야만 성장이 가능하다. 성장을 위한 한 편의 파노라마다.

탈피는 신중히 진행된다. 근육이나 감각 신경들이 떨어져 나갈 표피층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5종류 이상의 호르몬이 방출되며 표피층 사이에 공간이 생기면서 탈피액이 분비된다. 이후 새로운 표피가 주름과 함께 층을 형성한다. 3분의 1 정도의 표피층이 떨어져 나가는 탈피가 끝나면 주름 잡힌 새 표피층이 펼쳐지면서 몸의 표면적이 넓어진다. 이제 외부 골격이 단단해지면서 성장한다. 탈바꿈하는 것이다.

탈피의 라틴어 어원은 변화이다. 목숨을 위해 무겁고 때론 거추장스러울 수 있는 껍질을 맨다. 그러다가 성장 때문에 고향을 찾아가 고통스러운 탈피를 한다. 생명의 성장, 그 비밀은 어쩌면 살기 위해 삶의 근간을 버려야 하는 모순에 있을지 모른다. 그 모험에 나서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진화를 결정한다.

김재호 과학평론가
#곤충 탈피#환골탈태#피부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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