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종수]대통령에게 직언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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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근 비판 한마디에 이성 잃는 대통령들
권력 독점하려는 끝없는 욕망 때문
목숨 걸고 상소했던 조선 선비의 전통을 정치 시스템화해야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쓴소리를 했다가 적폐로 몰렸다. 안 지사는 서울의 한 초청 강연에서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을 제기할 권리를 적극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가 비난 댓글 세례를 받았다. 그 일이 있은 후 안 지사는 “현 정부 정책에 할 얘기가 있다면 집에 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하겠다”며 물러섰다.

권력의 서클 내에서조차도 바른말 혹은 다른 의견을 밝히는 게 쉽지 않다. 지지자들뿐 아니라 권력자 스스로도 비판에 이성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통령 중 성격 좋기로 유명했던 레이건 전 대통령은 보좌관 3인방 중 한 명이 쓴소리를 하자 열쇠꾸러미를 그에게 던져버렸다. 섹스 스캔들로 유명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은 언론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미국의 고고학자가 남미에서 여자 미라를 발견했다는 뉴스를 보다가 “키스라도 해주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 미라”라고 말을 뱉었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가던 공보비서가 지금은 그런 발언이 위험하다고 지적하자 클린턴 전 대통령은 공보비서의 뺨을 때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신의 사상을 집요하게 캐묻는 기자 앞에서 자개 재떨이를 방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화가 나면 그는 육영수 여사에게도 재떨이를 던진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이제 와 확인할 방도는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인물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대통령에게 바른말을 해야 할 사안이 생기면, 그걸 일단 머리에 보관하며 기회를 기다린다. 대통령이 제일 좋아하는 게 국민들의 지지율이 올랐다는 소식인데, 그런 희소식이 있을 때 그걸 먼저 보고하고 거기에 슬쩍 듣기 싫은 얘기를 부드럽게 얹어서 한다는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때 정무수석을 지낸 사람은 직언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회적으로 토로했다. 대통령에게 제안할 좋은 아이디어가 생기면 마치 언젠가 대통령이 그걸 말했던 것처럼, 말하자면 그 아이디어의 저작권이 대통령에게 있는 양 말을 꺼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청와대 실장을 지낸 사람은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고백한다. 대통령은 아침 수석회의를 하기 전 이미 주요 조간신문을 읽고, 대개는 화가 나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정책은 왜 제대로 안 되고, 홍보는 왜 적극적으로 안 했는지 날카로워져 있는데 거기다 쓴소리를 하는 건 근본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교황청이나 미국의 백악관에서는 공개적으로 ‘악마의 변호인’을 두는 경우가 있었다. 바티칸은 시성(諡聖) 여부를 결정할 때 의도적으로 후보자의 신앙이나 기적의 허구성을 파헤치는 직책을 1587년 이래 두어 왔다. 1983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그 기능이 약화되었을 뿐이다. 포드 전 미 대통령 때 국무장관을 지낸 키신저는 회고록에서 백악관의 주요 회의 때 일부러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하는 사람을 참석시켜 의견이 상호 교차 확인되도록 했다고 썼다.

권력의 무서움, 그리고 그 권력을 나누어 갖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 때문일 것이다. 이미 권력을 차지했지만, 거기서 한 계단 더 올라서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한다. 거기에 동일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동조화와 쏠림 현상이 더 확대된다. 한쪽으로만 사회 현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한쪽으로만 보는 외눈박이를 그리스 신화는 괴물로 묘사하고 있다.

이쯤 되면, 지부상소(持斧上疏) 생각이 난다. 고려와 조선의 선비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아예 자신의 목을 쳐달라는 뜻으로 도끼를 옆에 놓고 하던 상소다. 조헌과 최익현의 지부상소는 유명한 이야기다.

이제 와서 지부상소를 권력의 측근들에게 권하는 게 아니다. 모든 건 시스템으로 하는 게 옳고, 직언과 정보도 시스템으로 이루어지도록 설계하는 게 필요하다. 지금 적폐를 청산한다고 하지만, 사람만 교체할 뿐 그 이상의 대안적 발전상을 내놓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 옛 정권의 사람을 자기 진영의 사람들로 바꾸기만 하는 공기업 사장들의 인사가 대표적이다.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걸 설득할 수 있도록 현실을 바로잡아 나가야 정권도 건강해지고 사회도 발전할 수 있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안희정#문재인 대통령 지지자#적폐#대통령 직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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