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정양환]엄마가 많이 아파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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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환 문화부 기자
정양환 문화부 기자
‘엄마도 꿈이 많았죠. 한땐 예쁘고 젊었죠./우리가 뺏어 버렸죠. 엄만 후회가 없대요./엄마는 아직 몰라요. 시간이 이제 없단 걸/말해줄 수가 없어서, 우린 거짓 희망만 주네요.’

망했다.

추천받을 때 “조심하라”는 경고를 들었건만. 야근 마친 까만 밤, 한적한 버스 안이라 방심했던 걸까. 귓가를 꼬집던 노래가 세차게 목구멍을 때린다. 제발 앞자리 학생이 눈치 채지 말았으면. 엄지로 꾹꾹, 눈두덩을 마구 눌러댔다.

추태 고백은 그만. 이건 이젠 옛날 가수가 되어 버린, 한 밴드가 내놓은 ‘뻔한’ 발라드에 대한 이야기다.

분명히 얘기한다. 공일오비(015B)는 한물갔다. 1990년대 얼마나 쩌렁쩌렁 했는지 아무 상관없다. 14일 신곡을 발표했는데, 차트엔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제목도 이게 뭔가. ‘엄마가 많이 아파요’라니. 게다가 윤종신이 불렀다. 그들의 데뷔 곡 ‘텅 빈 거리에서’(1990년)처럼. 시대착오란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멜로디나 코드 진행이 상투적입니다. 딱 ‘그 시절’풍이에요. 생활 밀착형 가사도 당대야 신선했지만…. 그런데 왜 이 곡이 사람을 미치게 하냐고요? 그건, 뮤지션의 ‘진정성’이 담겼기 때문이겠죠. 형식이나 스타일만 갖고는 설명하기 힘든.”(대중음악평론가 A 씨)

실은 ‘엄마가…’는 015B가 돌아가신 엄마에게 바친 곡이다. 멤버인 장호일은 한 인터뷰에서 “2013년 겨울 갑작스레 불치 판정을 받고 세상을 떠나셨다”며 “처음부터 오랜 벗인 윤종신이 불러주길 바랐지만 그의 어머니도 몸이 편찮으셔 한참 망설였다”고 털어놨다. 그래서인가. 인터넷엔 윤종신이 콘서트에서 노래하다 목이 메는 동영상을 볼 수 있다. 그 울컥함을 뉘라서 탓할까. 혹 찾아볼 요량이면, 꼭 사람 없는 데서 보길.

18일 끝난 KBS2 ‘고백부부’도 그랬다. 이 드라마, 무지하게 전형적이다. 과거로 돌아간단 설정도, 소중한 가족이란 주제도 식상했다. 그런데 돌아가신 엄마와 만나는 대목에서 무장해제가 돼버린다. 마지막 회. “부모 없인 살아져도 자식 없인 못 살아.” 딸과 헤어지는 엄마(김미경)의 한마디. 묵직하다 못해 버거운. 그날 낮, 목포에선 세월호 마지막 영결식이 열렸다.

솔직히 이런 코드, ‘뇌’로는 싫어한다. 모성애는 생물진화에서 종족보존의 본능일 뿐이라 되뇌어 본다. 엄마의 희생이라 떠받들며 여성성을 짓누르는 잣대도 못마땅하다. 갈수록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사회에서 개인이 기댈 유일한 언덕은 사적 안전망인 가족”(김희경의 책 ‘이상한 정상 가족’)일지도. 그렇건 말건, 21세기에도 엄마란 키워드가 주야장천 먹히는 게 개운치는 않다.

하지만 심장은 뇌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줄 안다. 그래도 엄마는 엄마다. 부모는 부모다. 로런스 그로스버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대중음악의 주요 기능은 수용자를 ‘정서(affect)의 공간’으로 불러오는 것”이라며 “정서는 삶의 느낌이라 설명하는 것과 긴밀히 연결된다”고 했다. 015B는 한탄한다. “언젠간 잘해 줘야지 그렇게 미뤄만 두다가, 이렇게 헤어질 시간이 빨리 올 줄 몰랐다”고. 어쩜 뻔한 것이야말로 우리네 인생을 가장 적확히 꿰뚫는 건 아닐는지. 스산해서 남루할지라도. 또 그리 똑 닮은,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온다.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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