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눈]이제는 회사를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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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서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박경서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1600년대 초 영국은 인도와의 무역거래를 위해 동인도회사(East-India Company)를 설립한다. 당시 영국과 인도 간 무역거래는 전 세계 교역량의 절반에 달할 만큼 막대한 규모였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금의 투자가 필요해 소수의 파트너가 투자하는 형태는 적절치 않았다. 이에 영국 정부는 다수의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업이 실패해도 투자한 자본만큼만 손실을 보는 유한책임(limited liability) 제도를 허용한다. 이는 오늘날 주식회사의 최초 모델이다.

주식회사는 대규모의 외부 자금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다수의 투자자가 모두 경영에 참여할 수는 없어 자연스럽게 소유(ownership)와 경영(management)이 분리된다. 이때 주요한 이슈의 하나는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 본능인 경영자들을 효율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지 여부다.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이사회의 주주대표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소위 오너경영 기업의 경우 이사회는 평균 4% 내외의 지분을 갖는 지배주주 일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소유가 분산된 민영화 기업의 경우에는 이사회가 경영자뿐만 아니라 정치세력 같은 외부자의 영향에 노출된다. 즉, 경영자는 이사회가 감시하지만 이사회는 누가 감시하는가(monitors’ monitor)의 문제가 대두된다.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방안들은 주로 오너가 있는 재벌기업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반면에 포스코나 시중은행같이 민영화된 기업의 지배구조에 관한 제도 개선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지리멸렬하다. 무엇보다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영진이 교체되는 관행은 회사 내 위계질서(hierarchy)를 파괴해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범이다. 최근 들어 민영화 기업의 경영진이 연임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향후 민영화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이러한 위계질서의 정점에 경영자나 정치세력이 아닌 주주, 즉 회사의 진짜 주인이 자리 잡아야 한다. 이를 구현할 수 있는 핵심 열쇠가 바로 이사회의 주주대표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신한은행은 일찍이 과점주주군이 존재하고 이사회에 참여함으로써 국내 은행 중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다. 우리은행은 정부 보유 주식을 소수의 과점주주에게 매각해 이들이 추천한 이사로 이사회를 구성하는 중대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아무리 전문경영자가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목소리를 내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주주들의 지지가 없다면 온갖 음해에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비록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이지만 민영화 기업에는 엄연히 주주가 있고 1% 이상의 상당한 금액을 투자한 주주도 다수 존재한다. 스웨덴을 필두로 북유럽의 국가들은 지분이 높은 소수의 주주로 구성된 임원추천위원회(nominating committee)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주주들에 의해 추천된 이사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주주의 눈치를 보고 이를 경영에 반영한다. 과점적 구조이기 때문에 특정 주주만의 사적 이익이 허용되지도 않는다. 이제 우리의 회사를 특정인이 아닌 다수의 주주에게 돌려 주는 노력을 기울일 때가 왔다.

박경서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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