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배극인]지금 한국의 얼굴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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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극인 산업부장
배극인 산업부장
요즘 국산 자동차 품질은 웬만한 고급 외제차 못지않다는 평가가 많다. 그런데도 해외 시장에서 제값을 못 받는다.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뿌리 깊은 선입견 때문이다. 내구성은 완성차 메이커만의 책임은 아니다. 자동차 부품 70%는 회사 밖에서 조달한다. 플라스틱 하나까지, 그 나라 공업 역량의 총합이 자동차 품질을 결정한다고 봐야 한다.

국산차가 제값을 못 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미지다. 현대차가 엑셀 판매로 기세를 올리던 미국 시장에서 1980년대 후반 처음 쓴맛을 본 것도 이미지 때문이었다. 현대차는 당시 쏘나타로 북미 중형차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캐나다 퀘벡주 브로몽시에 1989년 연산 10만 대 공장을 완공했지만 4년 만에 접었다. 이미 형성된 ‘싸구려’ 이미지로는 경쟁 차종이 즐비한 시장의 문턱을 넘어서기 쉽지 않았다. 당시 경험은 두고두고 현대차 해외 진출에 쓴 약이 됐다.

이미지를 만드는 힘은 스토리텔링이다. 1961년 미국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폴크스바겐의 ‘딱정벌레 비틀’ 지면 광고는 지금도 마케팅 업계의 전설이다. ‘불량품’이라는 헤드라인 아래 비틀이 등장한다. 그 아래 뭐가 불량인지를 설명했는데, 내용이 반전이다. 철저한 품질검사에서 앞좌석 사물함 문 크롬 도금의 작은 흠집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하루 자동차 생산 대수보다 많은 품질 검사원들이 여러분은 발견하지 못할 작은 불량까지 모두 찾아냅니다.’ 폴크스바겐은 이듬해 미국 내 수입차 점유율 50%를 차지했다.

제조업 왕국 일본도 마찬가지다. 도요타는 개발 단계에서부터 각종 스토리를 입힌 ‘렉서스 신화’로 독일 고급차 아성에 도전했다. NHK 등 일본 방송은 지금도 장인 정신을 상징하는 ‘모노즈쿠리(もの造り)’ 사례를 끊임없이 발굴해 해외로 내보낸다. 기술자 두 팀이 나와 각종 제조 기술을 겨루는 프로그램은 4년째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이미지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고 생명력이 길다. 2015년 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파문이 터졌을 때 많은 한국 소비자들이 ‘설마’ 했던 것도 그동안 쌓인 신뢰 때문이었다. 이어 다임러그룹이 메르세데스벤츠 자동차에 배출가스 조작 장치를 부착해 온 의혹이 5월 제기되면서 불신이 커졌지만 독일차는 여전히 잘 팔린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고베제강이 도요타, 닛산 등 주요 자동차 업체에 품질데이터 조작 자재를 납품한 사건이 터졌다. 닛산, 스바루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품질검사를 무자격자에게 맡겨 왔던 것도 드러났다. 하지만 ‘메이드 인 저팬(Made in Japan)’에 대한 신뢰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이미지의 힘은 제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추석 전 만난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이제 일본도 한국도 제조업만으로 먹고사는 시대는 지났다. 관광과 서비스업을 보태야 한다”며 국가 이미지를 강조했다. 일본은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특유의 문화인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를 앞세워 사상 최대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올 들어 9월까지 이미 2200만 명이 일본을 찾아 무려 3조 엔을 쓰고 갔다. 쏘나타 120만 대 수출과 맞먹는 규모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8일 국회에서 한국을 극찬하고 떠났지만 이는 과거 성취에 대한 평가다. 지금 해외에 비치는 한국과 한국 기업 이미지는 과연 어떨까. 이어지는 수사와 재판으로 불안한 재계의 연말 분위기를 보며, 각종 시위로 주말마다 어수선한 광화문에서 문득 드는 생각이다.

배극인 산업부장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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