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선/김석환]안타까운 ‘북방의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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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환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김석환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한국인에게 북방은 ‘꿈의 공간’이다.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가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많은 애국지사들의 망명과 유랑, 독립의 꿈이 숨 쉬던 곳이다. 냉전 이후에는 자원과 시장,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지난 추석 연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는 한국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시내 중심가인 ‘아드미랄 포킨’ 거리(일명 아르바트 거리)는 한국 관광객들로 가게마다 긴 줄이 늘어섰다. 시내 호텔은 방이 없을 정도였다.

한국의 젊은 관광객들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새로운 관광 문화를 전파하기도 했다. 이들은 카카오톡 등을 활용해 각종 여행 채팅방을 개설하고 구글 맵을 활용해 유명 관광지들을 도보로 돌아다녔다. 각 채팅방에는 많게는 동시에 150명 이상이 참여해 지속적으로 정보를 업데이트하면서 관련 정보를 시시콜콜 주고받아 현지인들의 경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의 이면엔 너무나도 씁쓸한 또 다른 현실이 존재한다. 러시아 극동에 가장 먼저 진출해 가장 의욕적으로 사업을 펼치던 현대(현대중공업)가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극동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현대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이 ‘북방의 꿈’을 갖고 뛰어든 지 26년 만이다.

공항 인근에 위치했던 현대중공업의 GIS(가스절연개폐장치) 공장은 이미 러시아 기업 ‘도브로플로트’에 매각돼 간판을 바꿔 달았다. 현대호텔과 연해주 하롤 농장 등도 모두 매각된다. 현대중공업의 이번 극동 지역 철수는 ‘북방의 꿈’이 현실화되기엔 극복해야 할 난제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들 가운데 하나다. 또 다른 북방인 중국과는 사드 배치 문제 등을 둘러싸고 경제에 악영향이 크게 일고 있고, 금강산 관광 등 북한과의 경협은 북한 핵 문제로 한 치의 진전도 없다.

현대는 창업주 정주영 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북방의 꿈’을 상당 부분 폐기하게 됐다. 물론 모스크바에 중공업 등 일부가 계속 남고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시베리아 지역의 현대자동차 공장 등은 계속 가동된다. 현대아산도 여전히 북한과의 경협이 재개되리란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현대’라는 이름은 한국의 극동 진출의 상징이었기에 충격은 한동안 가시지 않을 듯하다. 그나마 변압기 공장을 빼고는 롯데가 현대의 호텔과 농장을 인수하기로 해 한-러 경협의 상징을 한국 기업이 인계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위로가 된다.

‘북방은 꿈이다.’ 추석 연휴 몰려간 관광객들은 이런 꿈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동시에 현대의 극동 지역 사업 매각 결정은 꿈의 현실화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말해준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전문성과 열정, 끈기와 치밀함이 겸비되어야만 ‘북방 개발의 꿈’이 가능하다. 좀 더 냉정하고 차분한 접근을 할 때다.
 
김석환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정우영 회장#북방은 꿈이다#북방 개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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