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영]못 잡아서 뜬 낚시예능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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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채널A 낚시예능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목요일 오후 11시)가 화제다. 연예계 낚시광들이 낚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도시어부’는 방송 5회 만인 지난주 시청률 3.916%로 동시간대 종합편성채널 시청률 1위에 올랐다(닐슨코리아).

낚시예능의 선전은 이례적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바다낚시를 즐긴 사람은 343만 명, 전체 낚시 인구는 700만 명이 넘으며 해마다 증가 추세다. 하지만 낚시예능은 지상파에서도 성공한 전례가 없다. 조용한 낚시와 떠들썩한 예능은 상극이다. 더구나 ‘도시어부’는 출연자들조차 “이렇게 안 잡혀서야 시청률이 나오겠나” 하고 걱정할 정도로 고기를 못 잡는다. 그런데 시청자 게시판을 보면 “못 잡아서 더 재밌다”는 의견들이 많다. 낚시의 실상을 꾸밈없이 보여줘 좋다는 것이다.

‘도시어부’의 고정 출연자는 모두 3명. 이덕화(65)는 낚시 경력 55년인 ‘낚시 무사’이고 30년 경력의 이경규(57)는 ‘낚시 도사’, 래퍼 마이크로닷(24)은 6세 때부터 낚싯대를 잡은 ‘낚시 영재’다. 셋의 낚시 경력을 합하면 100년이 넘는다. 하지만 이들이 한 회분 방송을 위해 10∼12시간 배를 타며 잡는 고기는 5마리 내외다. 하도 낚싯배를 타 ‘땅멀미’를 하는 셋과 달리 귀밑에 멀미약을 붙이고도 3시간마다 토하는 카메라맨 9명은 “고기를 섭외하고 싶을 지경”이라며 괴로워한다. 강호의 고수라도 잡는 날보다 못 잡는 날이 훨씬 많은 법, 그게 낚시다.

실력으로 치자면 이덕화가 으뜸이다. 무게 170kg에 3m짜리 상어도 낚아본 대물 낚시의 달인이다. 그런 고수가 붕어 낚시를 주로 해온 이경규의 어복(魚福)을 못 이긴다. 이경규는 미끼에게 물리고 폼도 어설프지만 ‘꽝’은 없다. 광어든 문어든 ‘던지면 무는’ 그를 동료들은 “용왕이 고기를 꽂아준다”며 용왕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이덕화가 30년간 다녔다는 전북 부안군 왕포로 떠난 날. 이경규가 처음 본 바다에서 씨알 좋은 민어를 건져 올리는 동안 조기 200마리를 장담했던 이덕화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길에서 넘어지는 법. 실력만큼 노력만큼 얻는 것도 아니다. 그게 낚시다.

방송에선 시원하게 낚아 올리는 순간보다 초조하게 입질을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길다. 이럴 땐 다양한 핑곗거리를 찾는다. “물때가 아니다” “다음 달이 제철이다” “해뜨기 전에 나왔어야 했다” “선장이 포인트를 모른다”…. 진짜 안 무는 날이면 “누가 여길 오자고 했느냐” “어제까지만 해도 참돔 6짜(60cm)가 나왔던 곳”이라며 입씨름도 벌인다. 속으로는 다들 안다. 무는 건 고기 마음이라는 걸. 바다가 내어준 만큼 잡는 것, 그게 낚시다.

출조길은 늘 설레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아쉽다. 그래도 다음 회에선 어김없이 “오늘은 느낌이 좋다”며 포인트로 향한다. 팔뚝만 한 고기가 낚싯대를 끌고 가는, 드물게 찾아오는 손맛을 기다리고 기다린다. 낚시광 소설가 헤밍웨이에게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노인과 바다’의 노련한 낚시꾼 산티아고도 집채만 한 청새치를 잡아 올리기까지 84일을 기다리지 않았던가. 목숨 걸고 잡은 청새치를 상어에게 다 뜯기고 결국 빈 배로 돌아온 산티아고는 승산 없는 게임을 접을 생각이 없는 듯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할 수는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개인적으론 이덕화의 말이 더 와 닿는다. “매일 많이 잡고 매일 꽝 맞으면 누가 낚시를 하겠어. 그래도 하다 보면 한 방이 있잖아.”

‘도시어부’는 낚시예능이 아니라 낚시다큐, 아니 인생극장이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낚시예능#도시어부#이덕화#이경규#마이크로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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