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윤창효]산마늘 재배하며 눈물 흘린 까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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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어느 분야나 조예가 깊을수록 두려움이 커진다. 초보자는 두려움이 없고 좋은 얘기만 귀담아들으며 쓴소리는 걸러 듣는 경향이 있다. 경험 부족과 욕심 때문이다. 나도 지난 2년 동안 강의를 듣느라 성공한 현장을 다녔기 때문에 좋은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성공한 임업인, 임산물 재배자들의 경험과 성공담들이다. 그런 얘기만 듣다 보니 나도 당장 시작할 수 있고 가까운 시일 내에 수익을 올릴 것 같은 용기에 차 있었다.

임산물 재배는 환경도 중요하고 지역적 특성도 중요하다. 고도의 기술과 많은 경험을 요하는 임산물이 많고, 지방자치단체마다 지원하는 작물들이 다르다. 대부분의 임산물은 밭에서 재배하는 농산물과 달리 5년 이상 관리하고 길러야 수확이 가능하다. 5년 동안 잡초, 물, 자연재해, 유해동물 등 갖가지 자연환경과 싸워서 이겨내야 자생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고 최소한 5년이 지나야 그 결과물을 내준다.

지난해 농촌진흥청 출신 산채 전문가의 강의가 끝난 후 질문을 했다. “가장 게으른 초보자가 할 수 있는 임산물이 무엇입니까?” 그는 “산마늘(명이나물)”이라고 말했다. 악조건에서도 잘 자라고 유해동물 피해도 적고, 이른 봄에 제일 먼저 나왔다가 여름이면 들어가기 때문에 풀과의 전쟁도 비교적 쉽다고 한다. 잎이 좁고 향이 강한 오대산 종과 잎이 넓고 부드러운 울릉 종이 있는데 취향에 따라 다르지만 생채로서는 울릉산이 더 식감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 시험 재배를 해보기로 했다. 재작년 10월 중순에 5년생 산마늘 모종 1000포기를 매입하여 해발 700m의 한쪽 기슭에 심었다. 겨울에 가볼 일이 없었다. 우선 춥기도 하고 겨우내 눈이 쌓여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듬해 3월 초순 식재해 둔 산마늘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산을 올라갔다. ‘말라 죽지는 않았을까? 얼어 죽지는 않았을까?’ 이른 봄, 잿빛 숲속을 홀로 올라가는데 저기 멀리 초록색의 어린잎이 삐죽하고 나와 있었다. 내가 시험 삼아 심어 놓고 겨우내 한 번도 가보지도 않고 내팽개치다시피 한 산마늘들이었다. 그런데 거의 1000포기가 다 살아 있는 듯했다.

뺨 위로 무엇인가 주르륵 흘렀다. 눈물이었다. 왜 눈물이 났을까. 아무것도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생명을 키워준 자연에 감동해서였을까. 부대끼며 살아온 세월 때문이었을까. 아예 비스듬히 누워 있는 놈도 있고, 어떤 놈은 뿌리만 지면에 살짝 걸쳤는데도 살아남은 놈도 있었다. 대단한 생명력이다. 울릉도 사람들의 명을 이어 줬을 만한…. 과연 ‘명이나물’이다.

작년 10월 초에 산마늘 종구를 식재하기 위해 임야를 간벌하고 잔목들의 뿌리를 모두 뽑아냈다. 여기에 산마늘 모종 10만 포기를 심었다. 산마늘이 모습을 드러내려면 내년 3월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정말 기대가 크다.
 
윤창효
 
※필자는 서울에서 정보기술(IT) 업계에 종사하다 현재 경남 거창을 오가며 산나물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임산물 재배#산채 전문가#산마늘#명이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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