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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의 호모부커스]<75>책에 지은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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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의 호모부커스]<75>책에 지은 죄

표정훈 출판평론가입력 2017-09-11 03:00수정 2017-09-1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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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 출판평론가
1781년 첫 한 벌이 완성된 ‘사고전서(四庫全書)’는 청나라 건륭제가 이끈 사상 최대의 출판 프로젝트였다. 1만680종 문헌을 경서, 역사, 사상, 문학으로 나눠 해제를 작성하고 그 가운데 3593종을 3만6000여 책으로 펴냈다. 필사를 맡을 3826명을 선발하여 한 사람이 연간 33만 자 이상, 5년 안에 200만 자를 쓰도록 하였다. 필사의 양과 정확도를 헤아려 우수한 이를 관리로 임용한 반면에 오탈자가 생기면 필사자 본인과 감독하는 관리를 모두 벌주었다.

조선의 유득공, 서호수 등과 친분이 깊었던 청나라 관리 이조원은 1782년 5월 ‘사고전서’ 한 벌을 성경(盛京·오늘날 선양)으로 운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만리장성 동쪽 끝 노룡(老龍)에서 장마를 만나 책을 담은 상자가 젖어버렸다. 이조원은 하옥되었다가 충군(充軍), 즉 변방의 군졸로 복무하는 벌을 받았다. 임지로 가는 도중 사면되기는 했지만 ‘사고전서’가 얼마나 중시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795년 정조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중요한 내용을 가려 뽑은 ‘사기영선(史記英選)’을 편찬하면서 정약용, 박제가 등에게 교정을 맡겼다. 정조가 이 책에 들인 정성을 정약용의 다음 기록에서 알 수 있다. ‘자주 마주 대하시며 의논하셨다. 진기한 음식을 내려 배불리 먹여주시고 꿩, 젓갈, 홍시, 귤을 비롯한 귀한 것들을 하사해 주셨다.’ 1796년 완성된 책을 본 정조는 오류와 결함이 많다는 이유로 정약용을 파직했다. 아끼는 신하라 하더라도 아끼는 책에는 못 미친다고 여긴 것일까.

1538년(중종 33년)에 성주사고에 불이 나 실록이 불타 버렸다. 조정에서는 고의적인 방화로 보고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지만, 어이없게도 관노의 실수로 인한 화재였다. 관노 종말과 그의 아들이 사고 누각 위에 모인 산비둘기를 잡고자 불을 켜들고 그물을 치다가 불똥이 떨어졌던 것. 애당초 검거한 연루 혐의자들을 석방하고 성주목사 등 사고 관리에 책임 있는 자들을 파직했다.

동아시아 전통 사회에서 책을 편찬하여 간행하고 보관하는 일은 문치(文治)의 기반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국책 사업’이다. 그런 사업에서 죄를 지은 관리가 파직, 충군, 감봉 등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날이라고 다를까. 국고를 쓰는 학술과 문화 분야 정부 지원 사업의 엄정한 집행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문화 분야 정부 지원 사업#정조#사기영선#사고전서#청나라 건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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