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표 걱정에 증세 없이 복지 확대할 수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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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첫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회의는 새 정부 정책 방향을 수립하는 자리일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출발점”이라며 저성장·양극화 해결을 위한 재정 확대를 주문했다. 보수 정권의 ‘작은 정부’가 아니라 ‘재분배 중심의 복지정책’을 중시하는 정부임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오늘까지의 회의 결과를 반영해 9월 2일 내년도 예산안과 함께 국회에 제출할 ‘2017∼2021 국가재정운용계획’에는 확장적 재정 기조가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이 “적극적인 재정정책은 강도 높은 재정개혁과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음에도 재정 건전성을 지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국가재정전략회의 자체가 1년 단위 예산만으로는 중장기 국가 전략을 짜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2004년 시작됐다. 하지만 역대 정부마다 균형재정을 목표로 하다가 결국은 적자를 다음 정부로 떠넘겨왔다.

178조 원짜리 국정과제 가계부를 내민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 균형재정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미 복지예산은 해마다 다른 분야보다 높은 증가율을 보여 올해 130조 원을 넘어섰다. 예산 400조 원 중 절반은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써야 하는 의무지출이다. 증세 없이 재정지출 절감과 지하경제 활성화만으로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논리가 더는 통하지 않는 게 사실이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당초 방침은 증세 논의를 내년 지방선거 이후로 넘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은 어제 경제장관회의에서 “더 나은 복지를 하려면 국민들이 형편이 되는 처지에서 더 부담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정직하게 해야 한다”며 “표 걱정을 한다고 증세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고 복지를 확대할 수는 없다”고 증세론에 불을 지폈다.

재정전략회의 때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초대형 기업에 대한 법인세율을 3%포인트 높이고, 5억 원 넘게 버는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을 2%포인트 인상하자고 제안한 것은 지나치게 즉흥적이다. 증세는 특정 세금을 뚝 떼어 세율만 높이면 끝나는 게 아니라 전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따져야 하는 고차방정식이다. 노무현 정부의 국가전략보고서인 ‘비전2030’이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증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또다시 달콤한 복지의 함정에 빠져 재원대책에서 우왕좌왕하며 재정적자만 키운다면 정권 후반에 때늦은 후회를 할 수도 있다.
#재분배 중심의 복지정책#재정개혁#증세 논의#비전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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