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명희]고마워, 나를 도와줘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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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여성동아 차장
김명희 여성동아 차장
까마귀에게 잡혀간 어린 꽃 한 송이가 있다. 마지막 꽃잎이 남을 때까지 돌무더기 속에서 하루하루를 흐느끼며 버텨내던 꽃은 소리를 듣고 다가온 무당벌레의 도움으로 고향으로 돌아간다. 얼마 전 세상에 나온 동화책 ‘고마워, 나를 도와줘서(Thank you, for helping me)’의 줄거리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내용이지만 사실은 무수히 많은 꽃들이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고 스러져 갔다면, 그리고 살아남은 꽃들이 70년 넘도록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한 채 여전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면 어떨까.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꽃들을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당부한다.

이미 눈치 챈 독자들도 있겠지만 ‘고마워, 나를 도와줘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동화책이다. 이 책의 저자 ‘포겟 미 낫(Forget Me Not)’은 제주도에 있는 한 학교의 학생들이 만든 동아리다. 역사 수업을 통해 위안부의 역사를 알게 된 학생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3년 전 동아리를 결성했고 위키피디아에 이메일을 보내는 등 국내외에 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알리는 활동을 전개해왔다.

꼬박 1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이번에 펴낸 책은 스토리 구성부터 그림, 번역(이 책은 우리말과 영어가 병기돼 있다), 교열, 출판을 위한 기금 마련까지 모든 과정을 학생들 손으로 직접 해냈다는 점에서 더 의미 있다. 학생들이 한여름 제주시청 앞에서 레모네이드와 브라우니를 판매해 마련한 수익금은 초판 1300부를 찍어내는 종잣돈이 됐다.

‘포겟 미 낫’의 활동은 최근 미국 교육계의 화두로 떠오른 ‘공동체에 대한 헌신’의 좋은 예다. 하버드대 교육대학원은 2014년 ‘Making Caring Common(MCC)’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직역하면 ‘돌보는 것이 일상이 되도록’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주변과 사회를 돌보고 배려할 줄 아는 바른 품성을 지닌 학생을 키워내는 것이다. 2016년 초 아이비리그를 포함한 미국의 80여 개 대학이 ‘변화의 흐름: 대학 입시를 통해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하다’라는 보고서를 통해 품성을 신입생 선발의 주요 기준으로 삼겠다고 발표하며 MCC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여기에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지덕체를 갖춘 균형 잡힌 인재를 양성하는 본연의 목표에서 벗어나 오로지 대입을 위한 극단적인 경쟁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위기와 반성이 깔려 있다. 또한 학생이 속한 인종과 지역 및 계급에 따라 다양한 커뮤니티에 대한 공헌을 반영함으로써 사회 통합과 불평등 해소에 기여한다는 취지도 담겨 있다.

이제 타인에 대한 배려나 공동체에 대한 기여를 어떻게 계량화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대학들은 포장을 걷어내고 그런 가치들이 학생의 삶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 진정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예를 들어 비싼 돈을 들여 해외에 봉사활동을 가는 것보다 이장님과 의논해 우리 동네에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든가 하는 일상적인 봉사와 헌신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 입시가 이런 식으로 바뀌면 거기에 맞춰 무늬만 그럴듯한 봉사 스펙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낫다. MCC의 연구에 따르면 마지못해 봉사활동을 시작한 학생들도 그 과정에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재미와 의미를 알아간다고 한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온 마을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란 아이가 주변과 이웃에 그것을 돌려주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도록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명희 여성동아 차장 mayhee@donga.com
#고마워 나를 도와줘서#포겟 미 낫#forget me not#공동체에 대한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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