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청와대 폴리페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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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이 되고 나서 전에 논문을 쓰려고 만들었던 메모 카드를 봤더니 왜 이걸 적어 놓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더라.” 서울대 출입기자 시절 김종운 총장으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1990년대 초반 총장을 지내는 동안 영문학자의 길에서 멀어지게 됐다는 회한이 서려 있었다. 김 총장은 수재를 받아들여 범재(凡才)로 졸업시킨다는 세간의 지적에도 뼈아파했던 기억이 난다.

▷캠퍼스에 있어도 행정을 맡으면 연구를 멀리 하기 쉬운데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교수들이 연구와 강의를 제대로 할 리 없다. 선거 때만 되면 폴리페서(polifessor·정치교수)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도 대선 주자에게 줄 대는 교수는 늘어만 간다. 집권에 실패해도 돌아갈 곳이 있고, 성공하면 ‘대박’을 치기 때문이다. 2013년 국회법이 개정돼 20대 총선부터 국회의원이 되려면 교수직을 사임해야 한다. 총리나 장관, 청와대 비서관 등 임명직은 휴직한 뒤 복귀할 수 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출신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두고 폴리페서 논란이 뜨겁다. 2008년 총선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던 서울대 교수를 향해 그가 “교수 1명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 교수 4명이 1년짜리 안식년을 반납해야 한다”고 한 비판이 부메랑이 됐다. 조 수석 논리대로라면 그가 휴직하면서 피해 보는 교수는 없을까.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파국인지 조국인지, 서울대 교수 사퇴해야 한다”고 독설을 날렸다. 하지만 2002∼2012년 조 교수의 논문 인용 횟수가 법학 분야 1위였다는 옹호론도 있다.

▷조 수석은 ‘학자 정치인’ 서애 유성룡을 삶의 전범으로 삼고 있다며 자신의 ‘연구실 정치’를 합리화했다. 민정수석이 되자 페이스북에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겠지만 맞으며 가겠다”는 마지막 글을 올렸다. 또 민정수석 일은 정치하는 것이 아니라고 기자 문답에서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각종 저서와 발언을 통해 현실정치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면서 친문(친문재인) 성향을 드러냈다. ‘교수는 정치하면 안 되느냐’고 진작 커밍아웃 했다면 지금처럼 옹색하진 않았을 것 같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폴리페서#조국#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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