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문재인 내각 아니라 ‘이낙연 내각’이어야 책임총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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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새 정부 국무총리로 이낙연 전남지사를 지명하고 대통령비서실장에 대선 후보 시절 비서실장을 맡았던 임종석 전 의원을 임명했다. 이 지사의 총리 지명은 영남 출신인 문 대통령이 호남을 국정의 동반자로 삼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총리의 출신 지역보다 중요한 것은 대선 공약인 책임총리를 실천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다.

헌법에 장관은 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통령이 장관을 뽑고 총리에게 제청을 요구한다.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책임총리제를 약속했지만 총리의 제청은 사실상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대통령의 제왕화를 막으려면 책임총리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문 대통령은 어제 국회 취임선서에서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고 말했다. 제왕적 권력을 나누는 첫걸음이 책임총리제다.


책임총리제의 실현은 대통령의 의지만큼이나 총리 후보자의 의지에 달려 있다. 책임총리제가 말만 무성하고 실현되지 못한 것은 이회창 김종필 이해찬 등 과거 몇몇 실세 총리를 빼고는 대부분이 스스로 권한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는 어제 “책임총리라고 아무것에나 의견을 낸다는 건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그가 국회 동의 절차를 걸쳐 정식 총리가 된 뒤 장관을 제청해서는 내각 구성이 늦어질 우려가 있어 이번에는 제청권 행사를 다 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 해도 대통령의 인사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있을 때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면 책임총리라고 할 수 없다. 총리 역할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달라진 이상 얼굴마담 역할이나 할 총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대통령비서실장은 실질적인 권력 2인자란 말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 자리다. 문 대통령은 역대 정권이 대체로 중량급 인사를 임명해 온 이 자리에 상대적으로 젊은 51세의 임 전 의원을 앉혔다. 임 실장은 어제 “예스맨이 되지 않고 격의 없이 토론하겠다”며 “비서실에 비밀이 많다고 국민이 여기는 만큼 투명하게 운영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비서실장이 뭔지 잘 아는 비서실장 출신의 대통령이 13세 아래의 비서실장을 앉힌 것은 비서실장이 ‘대리(代理) 대통령’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박근혜 정권의 김기춘 비서실장처럼 왕실장 노릇을 하며 국정을 그르치는 일도, 노무현 정권의 386세대 운동권 출신 비서관이나 행정관들처럼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장관들을 흔드는 일도 재현돼서는 안 된다. 비서실이 옥상옥(屋上屋)의 권력기관화할 우려를 궁극적으로 불식시키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대통령이 총리와 장관들에게 실질적 권한을 돌려주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임 실장이 과거 주사파로 임수경을 월북시킨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 출신이라는 점에 우려를 나타냈다. 급변하는 시대에 오래전 오류를 자꾸 들춰내 발목을 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비판을 받는 당사자도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더 많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문재인#문재인 내각#이낙연#책임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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