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의 뉴스룸]일자리 창출이 애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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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산업부 기자
김현수 산업부 기자
작년 말 아일랜드 출장은 여러모로 인상 깊었다. 떠나기 전 이미지는 이랬다.

‘감자 기근을 겪으며 어렵게 지내다가 낮은 법인세로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여 부흥했지만 2010년 재정위기로 결국 큰 타격을 입은 나라.’

가서 보니 3년 만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은 졸업했고, 경제 성장률은 6%대로 회복세였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점은 만나는 사람마다 끊임없이 일자리 얘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일랜드투자청(IDA) 관계자는 더블린 곳곳에서 “저건 공사 중인 링크트인 본부인데, 지금 일자리가 1000개고 200개를 더 만들기로 했다”, “페이스북도 아일랜드에 1500개 일자리를 가지고 왔다”고 말했다. 현지 바이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도 “창업 후 가장 기뻤던 것은 박사급 인재를 위한 일자리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궁금했던 질문의 답도 일자리로 통했다. ‘법인세(12.5%)는 낮으면서 개인의 소득세는 40, 50%까지 부과하는 것은 불공평한 것 아닌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IDA 측은 “글로벌 기업이 아일랜드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면 우리 국민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 믿음에 답이라도 하듯 아일랜드의 실업률은 최근 6%대로 떨어졌다. 2010년 재정위기 직후 실업률은 한때 15%까지 치솟았었다.

아일랜드 인구는 한국의 10분의 1 수준으로 자체적으로 산업을 발달시키기 어려우니 외국인 투자 유치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적이 뭐든 간에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에 대한 존중은 배울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아직 외국 기업을 ‘점령군’처럼 보는 시각이 있다. 기업의 국적이 중요하다.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 당시 일반 국민이 느낀 것은 일종의 배신감이었다. 한국 기업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닌 것 같다는 감정적 반응이었다. 오죽하면 국회 국정감사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축구 한일전에서 누구를 응원하느냐’는 질문이 나왔을까. 롯데 관계자는 “창업주가 차라리 미국 교포였다면 욕을 덜 먹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한국 기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이든 한국 기업이든 갖가지 싫어하는 이유가 많다.

외국 기업은 점령군으로, 재벌은 개혁의 대상으로만 여기면 정작 실익을 놓칠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한국의 외국인 투자 유치는 2011∼2015년 5년 동안 464억 달러를 기록해 세계 37위 수준에 불과했다. 최근 10년간 해외로 나간 일자리는 3배 늘었지만 한국으로 들어오는 일자리는 1.5배 증가에 그쳤다. 그만큼 한국이 글로벌 기업이 찾아오기 좋은 나라는 아니라는 뜻이다. 원인으로 꼽히는 복잡한 규제의 배경에는 반(反)기업 정서도 한몫을 하고 있다.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을 보면 왜곡된 애국주의와 글로벌 기업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게 된다. 자국 경제에 기여하는데도 각종 보복을 서슴지 않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도 글로벌 기업에 대한 맹목적인 반감을 드러낼 때가 없지 않았다. 중국은 그나마 거대한 시장이 뒷받침하고 있어 때로 막무가내도 통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요즘 세상에는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게 가장 큰 애국이다.
 
김현수 산업부 기자 kimhs@donga.com
#아일랜드 일자리 창출#중국 사드#외국 기업#법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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