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선/최원목]한미 FTA ‘무결점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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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또는 종료 의사를 확인하고 말았다. 4월 18일 방한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한미 FTA를 재검토하고, 개혁하겠다”고 선언했음에도 우리 정부가 “미국이 모든 무역협정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을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고 축소 해석한 데 따른 결과다.

정부는 물론이고 국내 전문가들조차 아직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헌법상 통상협상 권한은 대통령이 아니라 의회에 있기 때문에 의회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러나 한미 FTA 탈퇴에는 미 의회 동의가 필요 없다. 1974년 통상법이 이미 대통령에게 통상협정 탈퇴 선언의 전권을 부여했기 때문이다(125조).

트럼프 대통령이 FTA 재협상을 선언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재협상 범위가 FTA 관세 철폐 계획을 수정하는 데 한정된다면 의회 동의 없이도 진행할 수 있다. 다만, 관세 문제가 아닌 다른 FTA 제도화 관련 조항들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의회 동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응 전략은 뚜렷하다. 관세 문제를 넘어 제도화 조항의 개선 문제로 협상을 이끌어가야 한다. 한미 FTA의 제도화 조항들의 문제점을 상세하고 논리적으로 파헤쳐 그 해악을 제거하자는 식으로 대가를 요구해야 한다. 투자자-국가 간 소송제도(ISD)의 남용을 방지하는 조항들을 삽입하고 정당한 환경규제 권리도 확보할 수 있다. 이미 국내적으로 상식적 규제가 되어 버린, 골목상권 보호와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정당성 확보 근거도 새 FTA에 마련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대가들을 효과적이고 논리적으로 미국에 제시할 수 있을 때, 한미 FTA 개정 협상은 새로운 이익의 균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이 모든 시나리오는 한미 FTA의 제도적 문제점에 대한 솔직한 토론과 분석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지금의 우리 정부는 스스로가 설정한 ‘한미 FTA 무결점 도그마’에 빠져 있다. 새 정부가 조속히 해야 할 시급한 과제는 정부부터 이런 도그마를 극복하는 일이다. 또 관변학자가 아닌 진정한 전문가들로 하여금 소신 있는 분석보고서를 양산하도록 독려하는 일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도널드 트럼프#한미 자유무역협정#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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