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좌우·양극단 넘은 실용주의자 마크롱 승리한 佛 대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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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현지 시간) 치러진 프랑스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정치 신예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39)가 66.1%의 압도적 득표로 당선됐다. 30대에 의석이 전혀 없는 대통령은 프랑스가 처음이다. 지난해 영국과 미국을 휩쓴 포퓰리즘 열풍 속에 반(反)세계화·국수주의를 내건 극우파 포퓰리스트 마린 르펜 국민전선(FN) 후보를 누른 마크롱의 승리를 두고 ‘21세기판 프랑스 혁명’이란 말까지 나온다. 변화와 새로운 미래에 대한 국민 갈망이 그만큼 컸다는 의미다.

투자은행 합병 전문가 출신으로 창당 1년여의 중도신당 ‘앙마르슈(전진)’를 이끈 마크롱을 향한 민심에는 주류 양대 정당에 대한 환멸과 실망이 깔려 있다. 기득권에 사로잡힌 집권 좌파 사회당은 무능했고, 우파 공화당은 부패했다. 양당은 끝없는 정쟁으로 국가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마크롱은 근소한 득표율로 함께 결선투표에 진출한 극우 성향의 르펜 후보를 두 배의 득표율로 압승했다. 양극단을 거부하는 프랑스인들의 중도 합리주의 성향이 반영된 덕이다. 그가 세계화에 처진 저소득 저숙련 노동자들에게 인기 영합적 해결책을 내민 르펜을 이긴 것은 ‘우파 생각을 수용할 수 있는 좌파’를 자처한 중도 실용주의에 힘입은 바 크다.

경제장관 시절 마크롱은 주 35시간 근로시간을 유지하면서도 일이 몰릴 때는 주 60시간 근로가 가능하도록 노동 유연성을 확대하는 식으로 우파 요구를 수용한 ‘마크롱법’을 2015년 관철시켰다. 친(親)기업정책으로 경제를 살리면서 실업자와 농민에 대한 실업급여를 확대하고 현행 연금제도를 유지하는 등 사회정책에선 좌파 노선을 지켰다. 영국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내걸었던 ‘제3의 길’을 연상시키는 행보가 표 확장성의 비결인 셈이다.

‘마크롱법’ 발의로 살해 협박까지 받고 법안 통과를 위해 200시간 이상 의회에서 설득하고도 기득권 정치에 막혀 좌절했던 그는 이번 대선에서 과감한 규제 혁파와 친기업 정책이 ‘유럽의 병자’ 프랑스를 살린다고 역설했다. 공공부문 일자리를 무려 12만 개 없애는 대신 정부 예산 62조 원을 직업훈련을 위해 쓰고 현 33.3% 법인세를 유럽연합(EU) 평균인 25%까지 내리는 파격 감세안으로 25%나 되는 청년실업을 해결하겠다고 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민자를 제한하고 외국인 고용기업에 세금을 매기겠다는 등 극단적 폐쇄 경제를 내건 르펜에 비해 마크롱의 정책이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자신을 향해 지나치게 우파적이라고 몰아붙인 여당과 ‘주장은 맞지만 정치 구도상 지지할 수 없다’는 야당으로부터 뛰쳐나와 독자 정당을 만들고, “같은 인물, 같은 생각으로는 변화의 시대에 대처할 수 없다. 좌우를 넘는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마크롱의 모습은 새로운 정치의 시대를 예고한다. 해고에 항의하는 근로자들에게 “기적같은 해법은 없다”며 고통 분담을 말한 정직성과 용기도 평가할 만하다. 무엇보다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대권을 잡을 수 있는 결선투표제라는 선거제도가 르펜 같은 극단적 포퓰리스트가 자리 잡지 못하는 토양을 제공했다는 점도 유념할 대목이다. 마크롱은 당선 연설 중 르펜을 언급했을 때 야유가 나오자 손으로 제지하며 통합을 강조했다. 마크롱의 실험이 프랑스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 기대된다.
#프랑스 대통령#마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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