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공주님 오셨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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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 도중 김여정이 오빠 김정은을 보좌하는 장면이 북한 중앙방송 화면에 여러 차례 등장했다.
4월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 도중 김여정이 오빠 김정은을 보좌하는 장면이 북한 중앙방송 화면에 여러 차례 등장했다.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2013년 겨울 어느 날, 북한에서 내로라하는 부친을 둔 20대 자녀들이 강원도 마식령스키장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갑자기 사복 입은 건장한 남성들이 우르르 들어와 사람들을 내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자란 ‘금수저’들이 순순히 응할 리 만무했다. 어렵게 평양에서 마식령까지 몇 시간 동안 달려와 겨우 좀 놀아보려 했는데 영문도 모르고 내쫓기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화가 난 한 젊은이가 나서 소리쳤다.

“당신들 누구야.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 중앙당 아무개야.”

요즘 남쪽에선 이런 짓이 항간의 분노를 자아낼 일이지만, 북한에선 아직도 이런 허세가 아주 진지하게 잘 먹힌다.

한 양복쟁이가 그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공주님 오셨습니다.”

젊은이가 목을 빼 살펴보니 저쪽에 검은 세단 몇 대가 서 있었다. 북한에서 권력자의 자녀로 살아가려면 눈치 또한 기막히게 빨라야 한다.

금수저들은 즉시 상황을 파악했다. 김여정이 친지들과 스키 타러 온 것이다. 그리고 이 사복 남성들은 김정은 가계를 호위하는 호위사령부 7국 소속일 터이다.

찍소리 못 내고 ‘공주님’에게 쫓겨나 자존심이 상한 금수저들은 원산의 한 호텔에서 밤새워 술을 퍼마셨다.

여정이 지금도 북한에서 공주님으로 불리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점점 오빠의 그늘 아래 무서운 권력자로 커가고 있다는 정황은 자주 목격된다.


이달 평양에서 진행된 태양절 관련 행사에서 여정은 여러 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13일 열린 여명거리 준공식에선 여정이 경호담당으로 보이는 중장 계급 군인과 이야기하며 나란히 행사장으로 들어오다 갑자기 멈춰 서서 뭔가를 지시하는 듯한 모습이 TV 카메라에 포착됐다. 지시를 받은 중장이 뒤돌아서 다시 부하에게 지시사항을 전달하며 “공주님 지시야” 했을지는 알 수 없다.

여정은 15일 열병식이 거행된 김일성광장 주석단에서도 화제의 인물이었다. 그는 주석단 뒤쪽을 부지런히 오가며 행사를 챙겼고, 최룡해 등 고위 간부들에게 거리낌 없이 접근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22세에 불과했던 천진난만했던 공주는 28세인 지금은 권력의 맛을 충분히 깨달은 무서운 공주로 변했을지 모른다. 국정원은 지난해 10월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여정이 최근 간부의 사소한 실수도 수시로 처벌하는 등 권력남용 행태를 보인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쯤 되면 간부들도 자기들끼리 공주님이라고 함부로 부르기 어렵게 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여정의 호칭은 공주님에서 ‘김여정 동지’로 바뀌게 될 것이다.

여정에 앞서 북한 고위급이 아는 공주는 두 명 더 있다. 김정일이 본처인 김영숙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자 여정의 이복언니 김설송도 한때 무서운 공주였던 시절이 있었다. 김정일은 2008년 8월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깨어난 뒤 거동이 불편해지자 설송에게 자신을 부축하게 했다. 당시 간부들 사이에선 “누가 설송의 눈에 잘못 보여 목이 날아갔다”는 소문이 자주 퍼졌다.

설송에게도 착했던 시절이 있다. 설송이 1989년 김일성대 생물학부에 입학해 처음 등교할 때 일화다. 당시 중앙당에서 근무했다가 은퇴한 남성이 대학 경비원이었는데, 그는 “대학총장 선생님께 전화해 달라”는 설송을 잡고 오지랖 넓게 굴었다.

“아버지가 누군데 총장을 불러? 그냥 중앙당에서 일한다고? 과장급이냐, 부부장급이냐. 과장급이면 입학할 때 2000달러쯤 뇌물 줬을 것이고, 부부장급 정도면 그냥 붙었겠네….”

하지만 뒤늦게 총장과 당 비서가 달려와 설송을 황송하게 영접하는 모습을 본 경비원은 사태를 파악하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이때 설송이 “아저씨, 괜찮아요” 하고 싱긋 웃고 넘어갔고, 경비원도 처벌받지 않았다는 소문이 대학에서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 퍼졌다. 여담이지만 설송이 생물학부에 입학했단 사실이 알려지자, 생물학부에 자녀를 둔 고위 간부들은 자식을 다른 학부에 옮기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다. 간부들은 “태양의 주변에 가면 타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정이 등장한 이후 설송이 어떻게 됐는지는 듣지 못했다. 김정일이 죽은 뒤 그를 챙겨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북한의 ‘원조공주’이자 여정의 고모인 김경희는 생사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조카의 손에 남편과 시댁 가문이 멸족되는 수모를 당한 경희의 생존 여부는 이제 와 사실 별 의미도 없다.

오빠와 부친이 죽자 비운의 공주로 전락한 고모와 이복언니와 달리 여정은 북한의 새 실세로 등극했다. 하지만 그의 미래 역시 오빠 김정은의 수명에 달렸을 뿐이다. 여정이 훗날 역사책에 ‘잔혹한 오누이’, ‘마녀공주’로 기록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 열병식#김정은#김여정#김설송#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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