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지영]윤동주의 부끄러움과 부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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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문화부 차장
김지영 문화부 차장
‘나는 무얼 바라/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윤동주·‘쉽게 씌어진 시’에서)

윤동주는 1917년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났고, 광복 6개월 전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8년의 생애를 마쳤다. 열다섯 살부터 시를 썼으나 시집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출간됐다. 삶이 짧았기에 독자들이 기억하는 건 언제나 젊은 얼굴이어서 안타깝고도 애틋한 시인이다.

올해는 시인 윤동주의 탄생 100년을 맞는 해다. 저작권(사후 70년)이 풀리고 지난해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복간본이 나오면서 윤동주 열풍은 뜨겁다. 1955년 정음사판 초판 시집을 복간한 ‘하늘과…’는 지난주 현재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집계 시집 부문 1위, 종합 11위다.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의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를 맞아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가 지난달 독자 108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윤동주를 왜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결과가 흥미롭다. ‘①남들이 좋아하니까 ②교과서에 나와서 ③기독교(개신교)인이라서 ④시가 좋아서 ⑤이 시대에 필요하니까 ⑥기타’ 중 답을 고르도록 했다. 조사자는 ‘교과서에 나와서’를 1위, ‘기독교인이라서’를 2위로 예상했지만 실제 답변은 ‘시가 좋아서’(73.8%)가 1위로 압도적이었다. 이 답변은 물론 윤동주 시를 좋아한다는 얘기지만, 눈길을 끄는 응답은 또 있다. ‘윤동주 시가 내 삶에 끼친 영향이 있다면’이라고 묻고 주관식으로 서술하도록 한 데 대해 한 답변자는 이렇게 적었다. “이과생이어서 글 하나 제대로 못 쓰는 사람인데 이분의 시 덕분에 시를 정말 좋아하게 되었어요.”

스마트폰을 터치하기만 하면 나오는 동영상과 게임으로 가뿐히 밤새울 수 있을 것 같은 세상에 ‘시가 좋다’니!

그래도 이 시대에 시(詩)란 소수 마니아의 취향이 아닐까, 라는 의구심을 거둘 수 없어 유희경 시인에게 물었다. 그는 시집 서점 ‘위트앤시니컬’의 주인이다. 신촌기차역 1호점에 이어 최근 합정역 인근에 2호점을 낸 그는 “1호점의 경우 하루 구매자가 40∼50명”이라고 전했다. 한 사람이 구매하는 시집이 2, 3권 이상이니 하루 평균 100여 권의 시집이 팔리는 셈이다. 그만큼 시집 호응이 크다는 얘기다. 일반인보다는 시인 지망생 구매자가 대부분 아니겠느냐고 넘겨짚었더니 유 씨의 대답이 흥미로웠다. “비율로 따지면 문예창작과 학생 등 시인 지망생이 7, 일반인이 3인데 기묘한 건 3이 7로 유입됩니다.” 시 읽기를 좋아하다 보면 시를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반인 대상 강의 ‘시 쓰기 처음학교’는 3년째 접어드는 최근에도 수강생이 빼곡하다. 강사인 시인들이 보기에 수강생은 일반인이지만, 그중에는 이름이 적잖이 알려진 인사들도 눈에 띈다. 대금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차승민 씨, 만화 ‘재수의 연습장’을 낸 만화가 재수 씨 등이 시 쓰기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짧은 글과 함께하는 그림을 작업해온 재수 씨는 어떤 글을 올릴지 아이디어를 찾다가 시를 만났고 써보게 됐다. 프로 시인이 되려는 건 아니라는 재수 씨에게 그렇다면 왜 시를 읽고 쓰느냐고 물었다. “단어의 무게감을 알게 돼서다. 가령 ‘벌레’라는 단어를 시에 쓰려면 벌레를 관찰하면서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어떤 언어 구조 안에서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 그렇게 고민을 하고 나면 ‘벌레 같은 놈’이란 말은 허투루 쓸 수가 없다.”

윤동주는 그토록 엄혹한 시대에 자신의 시가 쉽게 씌어지는 게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독자들은 시가 쉽게 씌어지지 않는다는 걸 안다. 70여 년 전 세상을 떠난 시인이 지금도 소환되고, 문학이 무력해 보이는 시대에 시를 읽고 쓰는 사람들이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김지영 문화부 차장 kimjy@donga.com
#윤동주#쉽게 씌어진 시#윤동주 탄생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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