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영]아∼ 옛날이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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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눈치 지원을 없애고 소신 지원을 시켜야 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성적을 통보받지도 못했는데 대학에 원서를 내는 선지원 후시험 방식으로 대학 입시를 치러야 했다. 학사모를 쓸 즈음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져 난리통 같은 입사 전쟁도 겪었다.

 1990년대에 대학 입학시험을 치르고 졸업한 세대는 현재 40대의 기성세대다. 이들은 불합리한 입시제도와 엄혹한 경제위기를 겪었지만 지금 세대보단 그나마 나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얼핏 합리적으로 보이는 입시제도에다 경제 규모는 커졌고 일자리 숫자도 늘어난 요즘이다. 입시, 입사 자기소개서를 보면 대학 총장이나 대기업 경영진에 지원하고도 남을 만한 스펙을 갖춘 지원자가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도 절대 다수에게 불합격 통지서가 날아드니 과거 힘든 시기를 겪은 세대가 현재 청년층을 안쓰럽게 바라볼 뿐이다. 자신들의 청년 시절엔 적어도 ‘좀 있으면 나아지겠지’라는 한 줄기 희망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갈수록 청년의 미래가 더 어둡기만 하다.

 이런 처지인 청년의 미래를 밝게 만들어야 할 대학이 대수술을 코앞에 둔 중증 환자처럼 심한 진통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4년제 대학과 전문대 입학정원은 55만 명 선인데 7년 뒤 고교 졸업생은 40만 명 정도로 뚝 떨어진다고 한다. 부실하고 실적 없는 대학은 문을 닫아야 하고, 현재 명문대로 불리는 학교도 백화점식 학과 운영을 포기하고 특화된 분야에 집중하며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대가 시흥에 캠퍼스를 추가로 짓고 이화여대가 평생교육단과대학 사업을 추진하려던 데에는 다 이런 배경이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소통 부재 등을 지적하며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혹여 마음속으론 서울 아닌 지방에 캠퍼스를 두면 2류대가 되는 것으로 느끼는 건 아닌지, 직장인들과 같이 학위를 받으면 학교 이름값이 떨어진다고 본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구조조정과 생존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학생과 학부모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정작 철밥통 교수 자리에는 손도 대지 못하는 일이 적지 않다. 입시 때에는 분명 ‘영어로 수업한다’고 했지만 실제 수업에선 “자, 다들 한국말이 편하죠?”라는 교수가 있었다는 명문대 학생도 봤다. 학생에겐 ‘글로벌’을 강요하면서 어학 실력은 학생보다 한참 떨어지고 케케묵은 고전이론만 읊는다며 교수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기자로 일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신기술로 무장해 나날이 성장하는 기업이나 혁신에 성공해 성과가 좋다고 평가받는 기관, 대학 사람들 입에서 ‘아∼ 옛날이여’라는 탄식을 들어본 기억은 없다. 그들은 현재와, 현재를 기반으로 한 미래를 말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내리막길을 걷는 조직의 구성원은 여지없이 과거의 영광을 주로 이야기한다. 현재 어려움을 겪게 된 수만 가지 이유를 대는 것도 특징이다. 그러니 미래가 어떻게 좋아질지 말하지 못한다.

 대학은 고등교육의 정점이면서 사회 각 기능의 두뇌와 손발을 키우는 인큐베이터나 다름없다. 개인의 ‘간판’으로 역할 한 것도 사실이다. 호시절에야 몇몇 부작용이 생겨도 견딜 만했겠지만 이제 학교 다닐 인구 자체가 줄어들고 ‘대학 교육이 살아가는 데 뭔 필요가 있나’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듣는 지경이다.

 지금은 마스크 쓰고 자신의 주장을 무한정 발산 중인 어느 대학의 학생이 시간이 흘러 기성세대가 됐을 때 ‘아, 그래도 그땐 명문대 소리라도 들었는데…’라고 한탄만 되풀이하진 않을지 걱정이다. 물론 학교 간판이 그때까지 남아있기라도 하면 다행이겠지만 말이다.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
#대학 입시#imf#기성세대#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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