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이 밝힌 ‘한국형 양적완화’에 반대한 韓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3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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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윤면식 부총재보가 어제 “(구조조정 재원 마련을 위한) 한국형 양적완화는 통상 중앙은행이 하는 양적완화와는 차이가 있다”며 꼭 추진하려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한국판 양적완화 검토 방침을 밝힌 지 사흘 만에 한은이 사실상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윤 부총재보는 “국책은행에 자본금 확충이 필요하다면 이는 기본적으로 재정의 역할”이라고 말해 세금 투입을 주장했다. 국민의당이 “재원 조달이 필요하다면 정부 재정으로 해야지 화폐를 찍어서 편법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어제 구조조정 재원 마련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대해 “요건에 안 맞을 것”이라며 반대해 빚을 낼 수는 없음을 시사했다.

대통령 방침에 한은이 반기(反旗)를 들었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어제 오후 이주열 한은 총재는 “대통령이 말씀하신 것을 반박한 게 아니다. 논의를 해봐야 한다”고 해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비용을 대기 위해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내는 한국형 양적완화의 성격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당장 정부 재정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여 정부 성적표는 깨끗하겠지만 국민 전체에 부담이 돌아오는 건 마찬가지다. 재정 투입을 위해 추경을 편성하거나 국채를 발행하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우려도 정부 시각일 뿐이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정책 실패와 책임 공방이 벌어지는 것이 더 우려스러운 게 아닌가.

1997년 외환위기 때나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도 정부가 구조조정 계획을 밝힌 단계에서 이 정도의 불협화음이 나온 적은 없다. 박 대통령으로선 경제를 살리기 위해 고심 끝에 한국형 양적완화의 깃발을 들었겠지만 되레 레임덕 같은 현상이 먼저 드러나고 말았다. 정부, 한은, 채권단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어제부터 1박 2일 ‘상경투쟁’을 시작하는 등 구조조정에 반발하고 나섰다. 이래서야 구조조정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한국형 양적완화는 구조조정의 수단일 뿐 본령은 아니다. 정부는 조선·해운업 기업주와 국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의 심각한 무능과 무책임이 빚은 대규모 부실의 대가를 왜 죄 없는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지 먼저 국민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행#구조조정#양적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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