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주경철]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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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與 예상한 부실 예측력으론… 10년 뒤 한반도 정세 전망 어려워
美蘇 체제 영원할 것 같던 시기… ‘소련 몰락’ 주장 제기됐지만
장밋빛 위장사기술만 판쳤다… 지금 필요한 건 자료를 읽는 혜안
위험에 눈감으며 위장하지 말라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몇 달 전만 해도 새누리당이 180석 이상의 의석을 얻어 압도적인 거대 여당이 되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몇 달 뒤 선거 결과를 알지 못하는데 1년여 뒤 대선 결과, 혹은 10년 뒤 한반도 정세 같은 것들을 알 수 있을까?

20세기 말 소련 체제의 붕괴를 예로 들어보자. 되돌아보면, 그런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건만 소련의 몰락을 사전에 정확히 예견한 학자가 거의 없었다는 게 놀랍다. 사회과학의 예측력이 이런 정도밖에 안 된단 말인가 하는 반성의 소리가 나올 만했다.

사실 소련 체제가 유지 불가능하다고 언급한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다. 1969년에 안드레이 아말리크는 ‘1984년까지 소련은 생존할 수 있을까?’라는 저서에서 소련은 외부 충격으로 망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실제로 소련의 몰락을 초래한 것은 외부 충격이 아니라 내부 요인이었다. 1978년에 엘렌 당코스는 ‘파열된 제국’이라는 저서에서 소비에트연방 국가들 중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공화국들이 이반하여 연방이 해체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발트 해 쪽 공화국들이 먼저 연방에서 이탈했다. 당시로서는 나름대로 타당성 있는 근거 위에서 예측을 한 건데, 결과는 빗나가고 말았다.

소련 내부에서 체제 몰락의 위험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1988년 타티야나 자슬랍스카야라는 경제학자는 당·관료 특권층이 부가가치를 독차지하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분석 보고서를 내놓았고, 소련군 참모총장인 오르가코프 장군은 1984년에 소련 경제는 적군(赤軍)에 필수 군수품을 공급하기도 힘든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같은 외부 정보기관 역시 결국은 경제 문제가 소련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최소한 의식주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주는 한 체제가 몰락하리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이 체제가 조만간 무너진다고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냉전시대를 거친 세대는 잘 알지만 그때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제국이 지배하는 세상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다.

예외적으로 소련 체제의 몰락을 명료하게 주장한 사람으로는 에마뉘엘 토드라는 프랑스 학자를 들 수 있다. 그는 1976년에 ‘최종 붕괴(Chute Finale)’라는 저서에서 소련은 돌이킬 수 없는 몰락의 길을 가고 있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각종 인구 통계수치를 분석해서 그 같은 결론을 내렸다는 점이다. 사실 통계수치를 보면 소련이 정상 상태가 아니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출산율 감소로 인구 증가 추세가 멈추고 조만간 심각한 인구 위기에 내몰릴 것이 분명했다.

기대수명의 하락은 가장 충격적인 지표 중 하나다. 1965년 남성의 출생 시 평균 기대수명이 65세였다가 1980년에 61세로 하락했는데, 산업화한 국가 중 기대수명이 떨어진 나라로는 소련이 유일하다. 모든 아이들에 대한 예방접종은 러시아혁명 직후인 1930, 40년대에는 가능했으나 오히려 1960, 70년대에 와서 불가능해졌다. 그 결과 유아사망률은 1970년대에 1000명당 30명에 달했는데, 같은 시기에 프랑스의 경우에는 8명에 불과했다. 정말로 놀라운 것은 신생아 출산은 연 500만 명이 채 안 되는 반면 낙태는 800만 건이 넘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알코올의존증은 망국병 수준이었다. 교통사고의 60%, 강간·살인의 80%가 술과 관련이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이 수치는 1980년대로 가면 90%까지 치솟았다.

이런 수치들은 많은 사실들을 알려준다. 사회안전망이 붕괴됐고, 경제가 완전히 비정상 상태이며,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데다, 앞으로도 희망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국민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단지 이 모든 것을 숨기고 장밋빛으로 위장하는 사기술이 판치고 있었을 따름이다. 솔제니친은 ‘거짓말이 일반화하고 강요되고 의무화한 점이 우리나라의 가장 끔찍한 측면’이라고 지적했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건 진정 어렵다. 그래도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말해 주는 자료들은 상당히 많다. 그런 것을 읽을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할 뿐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명료하게 정식화하지 못하더라도 느낌으로 큰 흐름을 감지하는지 모른다. 가장 위험한 것은 위험 요소들을 일부러 안 보려 하고 거짓으로 위장하는 태도다.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소련 체제#수치#예측#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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