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병준]“이 나라가 너희들만의 나라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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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대통령에 친박 총리’… 與 일각서 나온 오만한 개헌론
대중적 인기만 있으면 국정철학-역량은 묻지도 않고
누구든 ‘대선후보 옷’ 입히는 한국 정치의 천박함
이 잘못된 정치공장-공정 위에 민의의 벼락이 쳤으면 좋겠다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지난 대통령선거 때 많은 사람이 물어 왔다. “문재인 후보를 잘 알지 않느냐. 대통령 하면 잘할 것 같으냐?”

모범답안은 당연히 “그렇다”였다. 같이 일한 인연과 시간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한 답도 했어야 했다. 그러나 대답은 늘 시원찮았다. 기껏해야 “사람은 좋지” 정도였다. 그러면 상대는 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때론 사이가 좋지 않으냐는 질문까지 받아야 했다.

아니었다.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경제·산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또 그 역량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짧지 않은 시간 서로의 얼굴을 보고 지냈지만 그런 문제를 같이 이야기해 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청와대를 비서실과 정책실로 나누어 운영하고 있었던 터라 더욱 그러했다.

국정운영 체계도 마음에 걸렸다. 누구건 실패하기 쉬운 구조로 돼 있었다. 비정상적인 정당과 국회, 움직이지 않는 관료집단, 목소리 큰 재벌과 노조 등 5년 단임의 대통령이 어찌할 수 없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 늘 하는 소리지만 바퀴도 핸들도 다 고장 난 차, 누가 기사가 된들 뭘 어찌하겠나.

그래서 답은 늘 그 모양이었다. 수많은 난제와 그에 대한 몸 떨리는 결정들, 연일 쏟아지는 비판과 비난…. 쉽게 잘할 것이라 말할 수 없었다. 권력의 고통이 어떤지 알기에, 또 그 끝이 ‘죽음’에까지 이르는 것을 보았기에 더욱 그러했다.

지금 다시 사람들이 물어 온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알지 않느냐? 대통령을 하면 잘할까?” 똑같이 대답한다. “모르겠다.” “글쎄, 두고 봐야지.”

이 역시 사이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역량이 낮다는 뜻은 더욱 아니다. 그냥 모르니 모른다 하는 것이다. 물론 외교 문제에서야 지켜볼 기회가 많았다. 유엔 사무총장 선거 때는 표를 얻기 위해 뛰어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그 외의 분야는 어쩔 수가 없다. 잘 모르겠다.

사실 누군들 제대로 알까? 말 한두 마디, 글 한두 줄로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마저도 그리 많지도 않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여당 일각에서 소위 반기문 대망론이 나온다. 심지어 ‘반기문 대통령’에 ‘친박 총리’의 이원집정부제 이야기도 나오고, 이를 위해 총리를 국회에서 선출하는 내용의 개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천박하다. 천박? 사전적 용어로 풀어드릴까? 생각이나 행동이 얕거나 상스럽다는 뜻이다. 일반 국민이야 대망론이든 뭐든 말할 수 있다. 이것저것 다 알아볼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색이 공당(公黨)이고, 그에 소속된 국회의원들 아닌가? 이렇게 얕고 상스러워 되겠나.

이원집정부제 이야기는 특히 그렇다. 반 총장이 외교 전문가라는 걸 들어 ‘외치(外治) 반기문, 내치(內治) 친박’ 어쩌고 하는 모양이다. 그러면 이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친박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기가 막힌다. 어떻게 이런 생각으로 헌정체계 개편을 이야기하나? 국가와 국민에 대한 방자함이 그 도를 넘었다.

우리 정치 전체의 고질(痼疾)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그렇다. 컴퓨터 바이러스 전문가건, 아니면 유엔 사무총장이건 대중적 인기가 있으면 누구든 불러들여 대통령후보 옷을 입힌다. 그들의 생각이나 역량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말이다.

심지어 누구의 자식이라 하여, 또 누구의 참모라 하여 불러들인다.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야 할 이 나라에 스스로 혁신을 해본 적도, 스스로의 힘으로 크게 일어서 본 적도 없는 사람들까지 지도자로 만들어 놓는다. 그러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서야 리더십이 어쩌고, 소통능력이 어쩌고 한다.

당내에 있는 사람을 후보로 세우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국정에 대한 생각과 역량이 세(勢)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세가 세를 만든다. 그리고 그 세가 큰 사람이 후보의 옷을 입는다. 국정에 대한 생각과 역량이 사라진 정치, 그런 가운데 국가는 길을 잃는다.

조짐이 좋지 않다. 공장과 공정이 좋아야 좋은 제품이 나온다. 이런 잘못된 정치공장과 정치공정에서 제대로 된 후보가 나오겠나? 또 누구든 실패하기 쉽게 만드는 지금의 헌정체계가 바로잡히겠나?

총선 대선 치르면 뭐 하나. 차라리 이 잘못된 공장과 공정 위에 민의의 벼락이 쳤으면 좋겠다. 우르릉 쾅 쾅, “이 나라가 너희들만의 나라냐?”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
#문재인#반기문#이원집정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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